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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70 - 주위를 둘러보세요.

고린도후서 9:1~3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을 두고,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글을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열성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지난해부터 준비가 되어 있다" 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열성을 듣고서, 많은 사람이 분발하였습니다. 내가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우리가 이 일로 여러분을 자랑한 것이 헛된 말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내가 말한 대로 여러분이 준비하고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부터 추워진다고 하죠? 새벽 공기부터 찹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을 기도합니다. 움츠린 어깨에 품어진 기쁨을 간직하는 하루이길 빕니다.

 

바울은 계속 고린도 교회에 구제를 위한 헌금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헌금을 위해 고린도에 보낼 동역자들을 소개한 바 있죠? 바울은 거듭 과거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 구제에 힘썼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이 일은 유명했습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그때의 일을 자랑했을 정도니까요. 고린도 교회는 아가야에서 가장 큰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상황이 다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후 분란을 겪었고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죠. 서로 교리 논쟁을 하며 다투고, 심지어 바울까지 비토 했던 바 있습니다. 그때 고린도 교회는 구제를 위해 어떤 태도였을까요?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서로 싸우느라 구제 헌금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보통 내분이 일면 남을 돕거나 주위를 둘러볼 겨를조차 갖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울이 계속해서 이전의 고린도 교회 구제 상황을 언급하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저 지금의 구제 헌금을 얻기 위해 예전의 좋은 상황을 단순히 상기시키고 있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더 많습니다. 그것은 뭘까요?

 

아시는 바대로 고린도 교회는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눈물의 편지를 기점으로 고린도 교회에는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엇나갔던 탕자가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던 것을 회개하며 이전의 사랑과 긍휼, 하나 됨과 일치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첫사랑으로 돌아오듯 그들은 처음 복음을 듣고 가졌던 믿음과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 회복의 첫 과정이 다툼을 멈추는 것이었을 거예요. 또한 사랑의 공동체로 회복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바울이 구제 헌금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이 바로 그때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자리에 서게 되는 과정 가운데 중요한 태도가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어요. 마치 하나님께서 죄악 된 우리를 둘러보시고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처럼, 어렵고 낙심에 빠진 이들을 돌보고, 가난과 궁핍에 내몰린 이들을 구제하는 일이 회복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렇게 복음이 전해지고 사랑이 퍼지듯 우리 안에 좋은 것들을 나누고, 공유하며 서로가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임을 드러내는 거죠.

 

그리스도인으로의 회복은 다툼을 멈추고 일치로 나가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끝없는 기대와 소망을 품는 거예요. 거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며 좋은 것을 나누는 겁니다. 좋은 마음, 좋은 말, 좋은 은혜들을 나누는 것이죠. 또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공평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 공평과 균등의 사랑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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