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8. 07:07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7:8~10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폭풍 같은 한 주였습니다. 쏟아지는 기도 제목들과 기쁜 소식들이 번갈아 들려왔습니다. 오늘 새벽 주님 앞에 서서 기도할 때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생이 마치 이번 일주일 같다는 것이었어요.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낙심했다가 다시 결심했다가, 넘어지기도 하지만 딛고 일어서기도 하는 인생의 과정을 한순간에 느낀 것 같았습니다. 아픔이 깊을수록 위로도 큰 법입니다. 실수가 실수로 남지 않고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뜻이죠.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는 길이 있습니다. 나를 위한 은혜의 통로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통한 주님의 말씀으로 승화되는 것이죠.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 되고, 나의 실패는 나의 간증이 되며, 나의 아픔은 나의 영광이 되는 그 길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본문으로 한 번 더 묵상하고자 합니다. 어제는 바울의 입장에서 묵상했다면 오늘은 고린도 교인들의 입장에서 묵상해 보도록 하죠. 사실 오늘 본문이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과오, 그렇다고 특별히 크게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본인도 뜨끔했을 정도로 격앙되고 분노에 찬 편지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이죠. 그 사실을 마치 미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 해도 동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냥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입니다. 저는 바울을 무조건 두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감정이 섞여 있었음이 분명하고 끝장을 내려는 태도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아직 하나님께서 끝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끝내려고 했던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과오를 하나님께서 덮어 주셨죠.
바울은 성품이 좋아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성격이 좋아서 사역을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실수도 잦고 논쟁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싸우기도 잘했어요. 두 번 다시 안 보겠다고 돌아서는 일도 있었죠. 그런데 그런 실수와 문제들을 안고도 그가 주님의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수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회개하며 점점 더 주님의 성품 가운데로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이 제겐 참 위로가 되기도 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이 본문을 읽는다면 바울은 자신의 과오를 미화시키기보다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찬양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이 준 상처가 고린도 교인들의 회개를 이끌었음에 감사하고 있죠.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픔에는 적정한 뜻이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탈이 나면 열이 오르고 배가 아프죠. 그 아픔은 내가 지금 나쁜 병균과 싸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죠. 그래서 응원해 줘야 합니다. 그 싸움을 도와주어야 하죠. 그런데 그 아픔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일 경우 그 아픔은 뜻에서 벗어나게 되죠. 아프니까 다 틀렸다고 느끼고, 아프니까 이제 곧 죽겠다고 결정한다면 어리석은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많은 아픔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의 아픔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은 다 우리의 삶의 과정 가운데 쓸모 있고, 귀하게 쓰일 아름다운 현실들이죠. 마치 바울의 실수조차도 그의 성장에 귀한 제물이 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아파해야 합니다.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아픔으로, 문제를 통해 극복하는 능력으로 살아야 하죠.
우리의 근심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근심을 통해 영적인 근력을 키우고 걱정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커져야 합니다. 홍해처럼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을 기대하는 소망이 살아나야 하고, 두려움 앞에서 몰려오는 염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며 인도하심을 따라 걷는 사랑이 피어나야 합니다. 나를 절망으로 모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근심입니다.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근심은 하나님을 떠난 근심이에요. 상처도 회개로 바꾸는 용기를 가지세요. 아픔도 성장으로 바꾸는 능력을 추구하세요. 그렇게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근심에는 손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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