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1. 06:54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7:1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러한 약속이 있으니,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으로 출근하는 모든 가족들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왠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마치 이들이 각 가정을 대표한,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를 대표하여 파견된 소중한 대표자들이라고 말이죠. 그분들이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응원을 해야죠. 우리의 인격과 신앙을 짊어지고 대표하는 것이니 우리의 응원과 축복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먼저 나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해 보시죠.
'당신의 오늘을 축복합니다.'
'그러므로'가 나왔으니 비록 장이 바뀌었지만 이어지는 말씀은 6장의 내용과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지금까지 묵상했던 내용들을 잠깐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바울은 6장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진리를 설명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 내용을 요약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떤 일을 당하든지,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며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한때 곤고한 날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 아버지 되시는 그분의 성품을 믿고 흔들리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결코 낙망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약속 위에 바울의 당부가 곁들여 있습니다. 그 당부는 영육 간에 강건하라는 것이죠. 어떤 것에도 더러워지지 않으며, 늘 거룩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이 구별이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죠?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거짓 교사들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이 강한 것 같아요. 고린도 교인들이 맥없이 당했던 그 허무함을 바울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죠.
그런데 늘 말씀드리지만 구별된다는 의미는 남보다 고귀해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니, 고귀하다는 것은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고귀했으면 해요. 그런데 기독교의 역사에서 고귀함, 거룩함, 구별됨 등이 잘못 쓰인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아름다운 성품이나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빛으로서의 단어들이 아니라 차별과 구분의 단어들로 많이 사용되었죠. 그래서 나와 이방인을 나눴고, 아군과 적군을 구분했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갈리고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은 파괴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죠. 십자군 전쟁은 그 정점에 있었던 가슴 아픈 사건이죠.
그런데 그 차별과 구분은 현재에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기독교 신앙에 맞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있고, 다른 신앙, 다른 가치,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과 우리는 함께 살죠. 이를 두고 갈등을 빚으며 논쟁을 합니다. 어떤 법이 좋으니, 어떤 어떤 이념이 나으니 서로 싸우죠. 그 가운데 가장 중심에 기독교가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문화적 비평가 자리를 자처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심판자 역할을 하며 비 그리스도인, 비 기독교와 다투죠. 이것을 영적인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타 종교인이나 비 기독교인들과는 척을 지며 살죠. 기독교의 교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또한 이웃 사랑의 교리를 벗어나는 이중적 태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언제나 부족하고 시시때때로 흔들려 늘 주님 앞에 회개와 돌이킴을 반복하는 연약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그저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을 의지하고 믿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웃과 척을 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믿습니다. 바울이 말한 더러움에서 떠나고 거룩해지라는 말씀은 나와 다른 이웃과 척을 지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면서도 신앙을 지키고, 본이 되며, 삶으로 그들에게 빛이 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사랑과 이해를 품되, 나의 신앙은 온전히 지키며, 존중과 배려를 하되, 나의 할 일은 반드시 하는 우리였으면 해요. 이웃을 위한다고 나의 삶의 패턴까지 바꾸며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나의 신앙생활을 존중받을 만큼 주변과 이웃에게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얻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그것이 거룩이니까요.
오늘도 눈에 거슬리는 일들 많겠죠? 나와 안 맞는 것도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너무 나를 주장하지 마세요. 그냥 우리는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을 놓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길을 가자고요. 논쟁이나 기싸움은 접어두고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그저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자고요. 우리의 길을 걷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도록, 아니, 부러워하도록 웃으며 담담히 할 일을 하자고요. 그렇게 거룩을 실현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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