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묵상일기 54 - 아무리 진흙탕 싸움이 일어도 그 속에 보배로운 진주는 빛나는 법입니다.

2022. 11. 4. 06:57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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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6:6~8a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문득 이 아침묵상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매일 아침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이 시간을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간이 나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매일 아침 말씀을 구하고 찾았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고 내가 이 시간을 지키며 말씀을 캐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말씀이 나를 찾아오셨고, 그 말씀이 나의 마음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지키는 줄 알았더니 나를 지켜주시고, 내가 세우는 줄을 알았더니 주님이 나를 세워주시네요. 결국 주님을 향한 나의 수고는 다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는 아침입니다.

 

우리는 순결과 지식, 인내와 친절,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을 묵상했습니다.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비결들이죠. 단순한 단어의 뜻을 떠나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우리는 찾았죠. 믿음이 좋은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과 내 안에 아픔을 축복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야 그 아픔이 상처로 남지 않고 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한 것을 붙잡는 것이 성령의 시작이고 그 속에 사랑이 꽃 핀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오늘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너무 함축적인 말이라서 어렵게 다가오죠?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모르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하기 힘든, 그러니까 아는 것도 아닌 그런 말이죠. 그럴 때는 어떻게 한다고요? 바울이 말한 정의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요. 바울이 가장 가까이 진리의 말씀에 대해 언급한 곳이 있는데요. 바로 5장의 19절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말이죠.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갈라졌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 걸림돌이었던 죄의 문제를 당신의 십자가로 해결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변호사를 자청하셔서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한발 더 나아가 그 화해의 사역을 우리에게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먼저 믿은 우리가 그렇지 못한 이들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의 다리로 삼으셨다는 뜻이죠. 

 

어쩌면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한 진리의 말씀을 이 화해의 사역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 구원의 기쁨과 은혜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다리 역할을 하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이웃사랑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좋은 말, 좋은 이야기, 좋은 생각을 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몸에 좋은 약이나 운동을 전해 보세요. 잘 듣던가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좋은 조언을 하거나 좋은 생각을 나누는데 사람들이 환호를 하던가요? 의외로 사람들은 좋은 것에 대해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각자에게 자신의 울타리가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 다르기 때문이죠. 복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결혼을 하고 살다 보면 자주 다투게 되죠. 다 사정이 다르고 사례가 다르지만 한 가지 비슷한 공통점이 있어요. 그것은 잘해보려다가 다투는 경우입니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서로 잘해보려고 하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부부는 없을 테죠. 그런데 그렇게 잘해보려고 하다고 다투고, 잘한다고 했는데 안 맞고, 서로를 위하다가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들이 있죠. 이게 참 어렵습니다. 좋은 것을 주려고 하다가 그걸 안 받으면 갑자기 기분이 상하고, 잘 대접하려다가 거절을 당하면 미워지고 하는 경우들이 우리에게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럴 때는 어찌해야 할까요?

 

해결 방안에 대해서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기에 쉽게 말하기도 어렵네요.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은 미워하지 않을 능력이고, 선한 것으로 시작한 것을 잊지 않을 능력이죠.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시작하셔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형상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그 선한 일은 마치 실패한 것처럼 우리의 죄와 배신으로 점철되었죠. 그런데 주님은 그 선한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시고 눈물지으시면서도 당신은 그 첫사랑을 잊지 않으셨어요. 그 첫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구원과 은혜, 축복과 은총의 기초입니다. 그 첫사랑을 잊지 않는 것, 처음 시작한 선한 일을 잃지 않는 것이 그분의 능력이죠.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잘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경우에도 실패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닌, 잘하려고 했던 그 선한 마음에 방점을 찍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잘하려고 했던 것이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그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이, 좋은 일을 하려다가 거절당한다고 해도 나의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첫사랑, 첫 마음, 첫 다짐, 첫 신앙을 지키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거절하고 오해하고 훼방하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나의 선한 마음이고, 나의 선한 양심입니다. 그 사랑만이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진흙탕 싸움이 일어도 그 속에 보배로운 진주는 빛나는 법입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빛나는 사랑만을 볼 줄 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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