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7. 07:01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7:8~10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번 주는 너무나 많은 일이 정신없이 쏟아졌습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상반된 일들로 제가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 정도였다는 것이죠. 가슴이 저미는 아픈 소식들에 눈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새로운 생명을 마주하는 기쁨도 주셨어요. 아침에 장례의 슬픔을 마주한 그날 오후에는 그동안 간절히 기도해 왔던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널뛰듯 몰아치는 아픔과 기쁨, 떠남과 만남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마치 제게 지금의 슬픔은 곧 마주할 기쁨의 시작이라고 하시는 듯했습니다. 지금의 아픔은 곧 성취될 완성의 기초라고 말이죠. 그렇게 슬픔에서 기쁨을, 아픔에서 소망을 창조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오늘을 시작합니다.
이미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눈물의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바 있죠. 허나 그 편지는 남아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황상 그 편지에는 강한 어조의 메시지가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죠. 어쩌면 바울이 가장 가슴 아프고 격앙된 상태에서 보낸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직설적인 필체였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제도 묵상했듯이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편지로 인해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죠. 그들이 그 편지로 말미암아 생각을 바꾸고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그 편지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인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강하고 날 선 어조였던 것이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그 편지로 여러분들이 아파했을 것'이라는 구절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보내고 바울이 잠깐이나마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죠. 괜히 보냈나?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리고 너무 강하게 글을 썼나? 하고 자책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따로 근거는 없습니다만 저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았을 것 같아요. 그런 자신의 편지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그 후회할만한 일이 가장 소중하고 귀히 사용되었으니까요.
때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취하자니 버거운 상태로 미적거리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수록 우리는 더욱 뜨뜻미지근한 자세를 취할 때가 많죠. 운동을 안 하자니 건강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하자니 귀찮아서 그냥 생각으로만 운동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믿음이 그런지도 몰라요.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남들을 돌보는 일까지 그렇게 믿음에 올인하자니 세상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믿음을 저버리자니 마음 한 구석이 켕겨서 적당히 교회 출석으로 퉁치는 경우들이 있죠. 적당히 흐르는 우리의 삶에 때론 강하게 잘라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필요 없는 것들, 부수적인 것들, 도움이 되지 않지만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들을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하고 안 하고를 정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좋고 나쁘고를 정하는 것 또한 기준이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다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또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삶의 방식 때문에, 습관 때문에, 여전히 후회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언젠가 단호한 결단을 내릴 때가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버리면 주님은 나를 위하여 채우십니다. 바울이 주님을 위해 자신의 학문을 버리자 주님께서 그의 학식에 복음의 학문을 더해 주시듯이, 아브라함이 주님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갈바를 알지 못한 채 주님을 따라나서자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를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이 주셨듯이 말이죠. 주님을 위해 행하는 나의 결단은 결코 손해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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