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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59 - 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골로새서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눔바와 그 부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 문안해 주십시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서 서쪽 직선거리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당시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여겨진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금융이 발달했다고 하죠. 위치도 좋고 풍경도 좋았던 모양이에요. 셀로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Antiochos) 2세가 도시를 재건하고 자신의 아내 이름인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도시는 그 옛날의 명성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자연재해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이후 복원되지 않아 현재는 그 이름마저 없어진 도시죠. 현재의 지명은 데니즐리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개 교회 중 하나의 교회가 자리했던 곳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책망을 받았던 교회였죠. 이 교회 또한 에바브라가 세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골로새교회와 교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본문은 짧고 그리 이해가 어렵지 않은 짧은 본문이지만 언어상으로 보면 불분명한 것들이 많습니다. 학자들은 주로 이렇게 불분명한 것들을 연구하잖아요? 가령, 라오디게아 교회는 몇 개인지, 혹은 눔바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이런 것들을 따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언어상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 교회와 눔바의 집에 모이는 교회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눔바와 그 부인의 집이라는 말도, 눔바의 아내라는 말인지, 아니면 눔바가 그 부인이라는 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각기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불분명한 것에 시간 낭비를 하지는 말자고요.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분명한 것들만 찾아보자고요. 

 

아마도 그것은 골로새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와 연관성을 가졌다는 것과,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열어 많은 이들을 맞이하는 그런 교회였다는 사실일 거예요. 그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자고요. 이 사실이 우리에게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구절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말의 뜻을 모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왜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골로새 교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바울에게 그 사정을 알리고 조언을 구할 정도였으니까요. 바울 또한 급하게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정도의 다급함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골로새 교회의 코가 석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골로새 교회에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문안하라고 하죠. 어쩌면 이 말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돌보라는 말일지도 몰라요. 다른 의미로 보면 그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고, 위로를 전하며, 어려움의 짐을 함께 지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게 저는 이해하기 어렵다고요. 마치 아픈 사람에게 다른 아픈 사람을 간호하라는 말처럼 들리잖아요?

 

이해 못할 말씀 앞에 저는 어렴풋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것은 아픈 사람, 고통받는 이,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한 가지 돌파구가 있다는 점이에요. 그것은 남을 위해 울어주는 것입니다. 나도 아프지만 아픈 남을 위해 위로하고, 나도 슬프지만 슬픈 남과 함께 울어주는 것이죠. 그 위로와 울음이 다시 나의 치료제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듣습니다. 나도 기도해야 할 것이 산더미예요. 그러나 남을 위해 기도할 때 나의 기도들에게도 응답이 있습니다. 나도 불안하고 괴롭고 힘듭니다. 그러나 남의 불안과 괴로움에 위로하며 안아줄 때, 내 안의 불안과 괴로움이 치료되기 시작합니다.

 

눔바든 부인이든 자신의 집을 연다는 사실이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아프고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그러나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지신다고요. 완전해서가 아니라, 다 가져서가 아니라, 나도 아프지만, 나도 힘겹지만 그래도 마음을 열고, 그래도 용기를 내서 누군가를 돕고 위로하고 기도할 때, 주님의 치유의 손길이 나에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중보기도. 남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나눔과 사랑, 그것도 남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다 나를 위해서예요. 다 내가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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