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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52 -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4:6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혜들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루에 하나씩 묵상했어요. 지금껏 아는 것조차 미루기 일쑤였던 내가, 즉각적인 실천에 이르기에 벅차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으로 세우고 매일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며 가슴에 새기는 용기가 일어나길 빕니다. 저는 책상 앞에 하나씩 적어 놓았습니다. 이렇게요.

 

매 상황마다 역지사지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나보다 높이라

지금 내 앞에 놓인 상황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내게 제일 좋은 시간임을 인정하라

 

오늘 알려주실 말씀은 무엇일까? 기대하며 말씀을 대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은 우리의 입술에 달릴 말이네요. 우리가 하는 말이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말로 만들어지는 분쟁과 다툼이 끝이 없고, 말 하나로 관계가 깨지기 십상이죠. 반대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은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말은 관계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하죠. 그러나 사실 말은 단순히 남과 나를 연결하는 고리만은 아닙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바로 나와 나의 교통(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내가 말한 말이 나의 인격이 된다면 어떨까요? 내가 한 말이 나의 미래가 된다면요? 내가 한 말에 내 삶이 묶인다면 어떠시겠어요? 혹시 설마? 하십니까? 

 

최근에 만난 목사님 한 분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알고 있던 목사님이었는데 연결이 끊겼다가 갑자기 찾아오셨어요. 대부분 이런 경우는 무언가 아픔이 있거나 위로가 필요한 경우죠. 말을 들어보니 목회 사역을 하다가 몇 차례 아픔을 당했던 모양입니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소위 쫓겨나는 아픔을 겪으셨더라고요. 제가 아는 이 분은 열정도 많고 순수한 분이셨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성품은 여전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자꾸 자신에게 안 좋은 일들이 계속되고 상처를 받다 보니 견딜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있었던 거죠.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해 줄 말이 없었어요. 예전에는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고 어쭙잖게 가르치려는 태도가 제게 있었는데, 요즘은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메시지임을 깨달을 때가 많아 같이 공감하며 들었습니다. 한참을 듣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나에게 오셨을까?' '그 많고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아닌 왜 하필이면 나일까?' 그러고 보니 이 분과 제가 깊은 교제를 나눈 적도 없고, 소위 친한 사이도 아닙니다. 이름 정도 알 사이랄까요? 심지어 찾아오셨을 때 처음 제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사이예요. 그런데 왜 날 찾아오고, 또 왜 이런 말을 나에게 할 생각을 하셨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느낀 것은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 메시지는 지금 내 안에 담겨있는 것일 거라고요.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지금 담겨있는 메시지가 필요해서 저에게 보내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에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죄를 묵상하지 말고 은혜를 묵상하라는 말씀 아닌가요? 좋은 눈으로 타인과 세상, 상황과 환경을 보라는 말씀이 제 안에 가득 차 있잖아요. 우리가 지금 골로새서를 묵상하면서 주신 말씀들이 있잖습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기분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능력이 믿음이고 신앙이라고요.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그 목사님의 말 가운데 유독 제 귀에 걸리는 말이 있었어요. 목사님의 말 가운데 항상 이런 말이 추임새처럼 있더라고요. '나는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어려서부터 상처가 많아' '용기가 없어' '믿음이 부족해' 유독 이 말들이 크게 들렸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이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나에게 계속 이런 말을 한다고 말이죠. '너는 못났어' '너는 부족해' '너는 용기도, 믿음도 없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더욱이 이 말을 혹시 가까운 가족,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듣는다면요? 괜찮으시겠어요? 더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게 있다고요. 친구보다, 가족보다, 부모에게서 듣는 것보다 더 상처를 받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요. 

 

'너는 해도 되는 일이 없어' '할 수는 있겠니?' '어제도 실패했는데 그게 오늘은 잘 될까?' '그만해.. 넌 안 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늘 가까이에서, 수도 없이 우리는 이 소리를 듣습니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말이죠. 그러니 어떻겠어요?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인생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이 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망설이다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다른 말 하지 않고 그 목사님에게 축복해 주었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찬양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이라고요. 한 번도 그렇게 느끼질 못했다고요. 그러니 목회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함께 하겠어요? 아마도 사랑을 받아도 도망갔을 테죠. 은혜가 와도 이것이 내게 주어진 기쁨인지,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내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상황이나 환경, 혹은 남에게 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내 안에 나를 향한 나의 말이 이미 다른 상황과 환경을 마주할 기회와 용기를 앗아갔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오늘 본문을 더 메시지 성경 번역본에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더라고요. 

 

골 4:6,    말할 때에는 은혜가 넘치게 하십시오. 대화할 때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제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으십시오.(더메시지 성경)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죄를 묵상하지 말고 은혜를 묵상하세요. 내 안에 나쁜 점을 묵상하기보다 좋은 점을 말해주세요. 남에게서 오점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좋은 점을 찾아 말로 대화하세요. 그 속에 관계가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는 관계 속에 미래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그렇게 미래를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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