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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51 - 나의 기분을 남에게 맡기지 마세요.

골로새서 4:5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4장에 들어와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한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권면은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죠. 먼저, 바울은 우리에게 차별에 대해 말합니다. 남과 나, 남과 남에 대한 차별의식을 버리라고 말하죠. 특별히 가진 자로서, 높은 자로서, 얻은 자로서의 자세를 말합니다.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는 뜻이죠. 이를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설명합니다. 차별에 대해서는 누누이 말씀드렸죠? 하나님의 공평은 차별하지 않는데서 나옵니다. 그다음의 이야기는 기도하라는 권면이죠. 이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한 가지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죠. 기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바로 감사가 기도라는 말이에요. 내가 모든 일에 감사하고, 모든 눈에 감사의 불을 밝힐 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이자 그분과의 소통임을 설명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중보기도였어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죠.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기초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하늘의 복을 쌓는 일이기도 합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함을 믿기 때문이죠.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만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고요.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주님의 새로운 계명으로 충성된 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5절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외부 사람이라고 표현된 것은 일반적인 타인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바울은 골로새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교인들, 즉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말하고 있죠. 그들에게 외부 사람이라면 믿지 않는 이들, 더 나아가 교회를 탄압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일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그런 외부 사람들을 대하며 삽니다. 때론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때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과 만나죠. 초대교회 구성원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될만한 외부인들도 많았을 거예요. 그런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찌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에게는 직접적인 삶의 문제였을 테죠. 그런 외부인들을 바울은 지혜롭게 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힘이 빠집니다. 지혜롭게 대하라는 말이 마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잘하면 된다.'라는 어이없는 대답처럼 들리기 때문이죠. 말이 쉽지 지혜롭게 대한다는 의미가 도대체 뭘까요? 감사하게도 바울은 이 지혜로운 행동에 대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말이죠.

 

'기회를 선용하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새번역본에는 '기회를 선용하라'로 번역되어 있는데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개역 개정본의 표현에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역 개정본에는 '세월을 아끼라'라고 표현되어 있죠. 굳이 원문을 직역하자면, '기회를 사라'는 말입니다. 약간씩 느낌이 다르죠? 뭐든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이전의 구절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외부인들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기회'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많은 외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지만 단순하게 분류하면 나와 맞는 사람, 나와 다른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겠죠? 좋게 표현했지만 심하게 표현하고 원수 같은 인간들, 생각만 해도 분노가 차오르고, 억울하고 복수하고 싶은 인간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지혜를 발휘하라고 말씀하죠. 이는 단순히 없었던 일, 혹은 참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회를 선용하래요. 원문대로 하면 기회를 사랍니다. 그 말씀은 아마도 그런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을 나에게 꼭 필요했던 순간, 나에게 감사한 일로 바꾸라는 말 말이죠. 우리말 속담인가요? 이런 말 있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어서는 고생을 해 봐야 한다는 당위성의 말이라면 저는 이 말을 신뢰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쩌면 이는 나이 먹은 늙은이들의 어쭙잖은 충고처럼 보이니까요. 그런데 좌충우돌 실패와 실수를 겪으며 성장하는 젊음이라면 그것이 실수여도 실패여도 기회로 선용하고 전진한다는 의미라면 옳은 말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어찌 사람을 가려 만날 수 있으며, 어찌 시간을 골라 지날 수 있겠어요? 나에게 좋은 것은 상황이 아닙니다. 악과 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마치 진흙에서 진주를 찾듯이 보배롭고 존귀한 것들을 찾아가는 길이 좋은 길이죠. 

 

사람에 대한 상처는 무엇보다도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죠. 삶의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사람의 상처들이 쌓인다는 의미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 상처가 상처로 남아 곯아 터진 사람은 그 자신이 어떤 이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로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한 것처럼 말입니다. 기회를 선용하라는 말은 그 기회가 늘 좋지만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죠. 어떤 세월을, 어떤 시간을, 어떤 만남을 그대로 두면 어떤 식으로든 악용될지도 모릅니다.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들을 선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시간이든, 어떤 일이든 기회로 여겨야 하고, 감사로 바꿀 줄 알아야 하죠. 그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추구해야 할 가치이고 사명이죠.

 

갑자기 이 말씀이 생각나네요.

 

디모데후서 4:2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전도용으로 생각해왔던 구절인데, 이 아침에는 오늘 묵상의 말씀과 연결되어 떠오릅니다. 기회가 좋든, 나쁘든 우리는 늘 꾸준히, 끝까지 나에게 꼭 필요하고 귀중하며 좋은 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복음이라고 말이죠. 

 

나의 기분을 남에게 맡기지 마세요. 남이 하라는 대로, 조정하는대로 내 기분을 넘겨주지 마세요. 나의 영과 마음과 생각은 내가 가꾸는 화원입니다.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에 내 화원을 내주지 마세요. 아무리 비바람, 태풍이 몰려와도 내 화원은 다시 재건하고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회를 선용하는 우리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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