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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46 -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골로새서 3:22~23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에 이어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에게 촌(寸)이라는 것이 있죠? 부부관계는 0촌, 부모 자식 관계는 1촌, 형제관계는 2촌 등으로 촌수를 계산하잖아요? 이런 의미로 보면 바울은 지금 우리의 모든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부터 사회적인 관계까지 말이죠. 오늘날 종과 주인으로 구분되는 관계는 없죠. 그러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해석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웃과의 관계로 범위를 넓혀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웃은 사촌이니까요.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이 계시죠. 직장에서 직장 상사에게 복종하라고요. 로마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롬 13:1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를 두고도 국가 권력에 복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죠. 뭐 액면 그래도 해석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만 저는 이 해석이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바울 자신도 국가권력에 복종하지는 않았죠. 로마의 지배하에 있을 당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는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비쳤으니까요. 그래서 감옥에도 가고 처형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이를 보면 단순한 해석을 넘은 보다 근본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쩌면 해답은 이어지는 본문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로마서 13장 1절을 마저 읽어보죠.

 

롬 13:1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 또한 해석이 갈리기도 합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을 마치 하나님께서 지금의 권력을 세우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이를 정해서 권력자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의 흐름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말이죠. 사람을 점지하여 권력을 주신다면 어찌 히틀러 같은 권력자를 세우시겠습니까? 우리 인생에 왜 일부러 고난을 주시겠어요? 이 의미는 고난조차도, 어려움조차도 주님의 섭리와 질서 안에 있는 것이니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기를 권면합니다. 당시는 노예제도가 있었으니 이 말은 주인의 권세, 주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다음 구절을 우리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죠.

 

골로새서 3:22~23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이 말을 붙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슨 일이든 주님께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종이든, 주인이든, 가정이든, 이웃이든, 권리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행동과 태도는 주님께 하는 듯하라는 뜻이라는 말이죠.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권세가 두려워 복종하며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자든, 종이든 내가 대하는 모든 이들이 마치 주님인 듯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어쩌면 이는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의 결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의 복종이 남편에 대한 강압적 굴종이 아니라 자발적 순종이어야 하듯이, 자녀에 대한 교육이 자녀가 아닌 나의 교육이듯이, 우리의 모든 관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주님이 주신 이유이고, 따라서 그 이유 앞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 아닐까요?

 

성경을 읽을 때 종, 주인, 남편, 아내 이런 단어에 주목하지 마세요. 그러는 순간, 우리는 진영논리에 빠집니다. 그리고 권리를 따지게 되어 있죠. 마치 어쩔 수 없어서든, 고치려고 노력하든 온통 죄만 묵상하는 머리처럼, 내 생각을 채우면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말씀이 인도하고자 하는 방향을 잃죠. 그러니 조금 더 넓게 말씀을 대하면 좋겠어요. 말씀도 감사와 기쁨으로 대하는 것과 불평과 불만으로 대하는 것이 천양지차인 거 아시죠? 이는 그저 긍정적, 부정적의 의미가 아닙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대하면 말씀을 읽는 눈이 넓어집니다. 따라서 해석의 여지도 넓어지죠. 반대로 불만의 눈으로 보면 점점 좁아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좁으면 오역들이 많아져요. 그래서 저는 말씀을 묵상하기 이전에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온전히 들어오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오늘도 많은 일이 우리 앞에 있겠죠? 모든 일에는 관계성이 있습니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작든, 크든, 중요하든, 혹은 하찮든, 심지어 싫든 좋든,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하나님이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앞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해요. 마치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눈에 띄지도 않는, 무시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당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듯이 말이죠. 그 작은 일이 하늘에서는 기억되는 큰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관계에는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어요. 모든 일에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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