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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41 - 감사하세요. 지금.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괴리는 인생의 최대 과제 중 하나입니다. 운동이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임을 분명히 알지만 운동을 하는 것과 아는 것은 차이는 큽니다. 앎과 삶의 차이는 마치 영과 육의 차이만큼 크죠.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사도바울도 이 문제에 꽤나 힘겨워하셨던 모양이에요. 그 처절한 고백이 로마서 7장에 나오죠. 

 

롬 7:22~23   나는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자신을 비참한 사람이라고까지 표현하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치 원함과 행함 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의 모습처럼 말이죠. 그런데 중요한 점은 바울의 처절한 고백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제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로마서 7장과 8장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터닝포인트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는 거듭남과 같은 중요한 포인트죠. 로마서 8장에 이르러 달라진 바울의 생각을 보시죠.

 

롬 8: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 아래 있음을 고백했었죠. 이는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죄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이를 목도하는 것이 매우 아팠던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 회개를 하는 우리들도 이와 같은 아픔을 겪습니다.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내일이 되면 또 그 죄에 묶여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는 늘 죄를 묵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울분과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죠. 그러나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가 아닙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회개는 죄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죠. 죄에서 의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를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은 그 돌이킴의 핵심을 우리에게 제공하죠. 바로 죄와 죽음의 법이 아니라 생명과 성령의 법을 묵상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죄로 나를 비추지 않고 의로움으로 나를 비추기로 한 거죠. 죄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 나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죄가 내 안에 있습니다. 매일 같은 죄를 반복하죠. 마치 운동선수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운동하기 싫어하는 것과 같은, 매일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과 같이 나의 발목을 잡는 일은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그 절망과 좌절, 게으름과 나태함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운동에 자신을 던지죠. 게으름은 행함으로 이기고, 나태함은 열정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8장의 핵심이죠. 그리고 그것이 거듭남임을 알려줍니다. 거듭났다고 죄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나 죄를 묵상하지 않고 의를 묵상하는 내 삶에서 죄가 자리할 곳은 없어집니다. 나쁜 생각은 늘 있어요. 부정적이고 불만족스러운 일들은 매 순간 일어납니다. 그것이 나를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생각은 그 자체로 죽지 않아요.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나쁜 생각은 좋은 생각으로 이기는 것이고,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불평은 감사로, 아픔은 기쁨으로, 불만은 사랑으로 이기는 겁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평강을 품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대충 3가지로 나눠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말씀이에요. 말씀이라고 해서 무슨 성경을 통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공부의 달인이 되라는 의미도 아니죠. 저는 매일 작은 묵상으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보통은 늘 그러죠. 이런 것이 무슨 능력이 될까? 매일 묵상을 나눈다고 내가 달라질까? 이에 대한 정답을 말씀드리죠. 달라집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은 달라집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예전의 모습 그대로죠.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묵상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교회를 다니고 자신을 성도라 믿으면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하나님과 일치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종교적 교인일 뿐이죠. 심도 깊고 대단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일 작은 묵상을 꾸준히 밥 먹듯 해 보세요. 어느 순간 거듭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두 번째는 나눔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눔인데요.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생각을 들어주는 것, 그 교제의 사이에 주님이 계십니다. 특별한 주제를 나눌 필요도 없습니다. 고도의 가르침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어요. 누군가의 아픔, 슬픔, 혹은 기쁨과 감사를 나누고 듣는 것 사이에 성령님의 운행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것 자체에 하나님의 바람이 일어요. 그래서 교제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어요. 아무도 안 만나면 아무 일 없을 줄 알아요. 다른 사람과 얽히지 않으면 자신이 평안할 줄 알죠.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회피하기 위해 교제를 끊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처를 안 받을 줄 알죠. 그런데 이게 착각입니다. 혼자 있으면 평안할 줄 아시죠? 혼자 있어보니 평화롭던가요? 외로움은 평화의 가장 큰 적입니다. 홀로 있을 때 영적 공격이 가장 심해요.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을 받을 때 하와가 홀로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안전합니다. 나 혼자 나를 책임질 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더불어 책임과 사명을 다할 때 더 안전해요. 그래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더욱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해요. 그것이 평화를 지키는 비결이니까요.

 

마지막으로는 감사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죠. 특별히 바울은 노래를 주문합니다. 제가, 찬양이 아니라 노래라고 표현한 것은, 비결의 초점이 우리의 입에서 노래가 나오게 하는 기분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감사가 노래처럼 나오게 하라는 뜻이죠. 그리고 그런 노래는 모두 찬양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면 기분이 좋다는 뜻이잖아요? 내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이 찬양입니다. 늘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찬양이에요.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감사는 가장 큰 찬양입니다. 감사는 내 마음을 평화로 지키는 초석이에요. 감사로 내 일상을 채우는 이유는, 감사가 나를 평안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감사하세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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