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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39 - 그래서 사랑이 제일입니다.

골로새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우리는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건 가면을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는 자연주의로 돌아가자거나 혹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을 부정하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잠시 잊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서 떨어지지는 않는 것들이기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고, 그분의 옷으로 가려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죠. 무언가를 숨기는 일은 힘들고 위험합니다. 무언가를 가리려고 덮는 일은 어려워요. 왜냐하면 늘 중심에는 가려야 할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가려야 할 것에 나의 무게 중심이 있다 보면 무엇으로 덮느냐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그냥 덮는 이유는 내가 가려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계속 말씀드렸던 것처럼 죄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늘 죄를 묵상하는 일이 되니까요. 늘 더러움이 보이니까요. 그러나 옷을 입는 문제는 무언가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예쁘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것에 무게 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이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얀 도화지에 실수로 검정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린 거예요. 그래서 그 종이를 망쳐버린 거죠. 하얀 도화지가 쓸모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어떤 화가가 그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요. 검정 물감이 떨어진 그 자리 주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데 조금 전까지 볼품 사나운 검정 물감 자국이 어느새 그림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리는 거죠. 완성된 그림을 보니 언제 실수했는가? 싶더라고요. 그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실수했던 부분인데 어느새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다는 생각 말이죠. 조금 전까지 내 눈에 중심은 실수한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눈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전체 그림에 눈길이 갔어요. 그 그림이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이것이 우리가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 지금까지 바울은 여러 가지 옷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긍휼과 친절, 온유와 인내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옷도 한두 가지가 아니죠. 양말도 신어야 하고, 속옷도 챙겨 입어야 하죠. 추울 때는 두툼한 외투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패셔니스타 사도 바울의 필살기 같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패션의 포인트를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죠. 패션 감각이라고는 일도 없는 저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입으라는 대로 입는 사람이죠. 저는 옷이 그냥 막 입으면 되는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옷을 입혀주는 분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제겐 다 똑같아 보이는 옷이지만 나름 옷의 조화가 있나 봐요. 그렇듯 바울 선생 역시 우리에게 옷이 조화롭고 패셔너블하게 보이기 위한 기술 하나를 알려줍니다. 화룡점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패션의 완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패션의 완성,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시죠.

 

우리 교회 최연소 가족 두 쌍둥이를 위해 여러분 많이 기도해 주셨죠? 이제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저도 사진 이외 직접 얼굴을 못 봤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가족 전체가 난리라고 해요. 이미 할머니들은 다 지쳐서 쓰러지시기 일보 직전이라고 하고, 애 엄마는 전화 문자조차 하지 못할 만큼 틈이 없다네요. 어디 쌍둥이뿐이겠습니까? 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애쓰고 고생하는 것은 어떤 성품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만 아는 어떤 이기적인 사람도 자녀에게는 모든 엄마들처럼 되죠. 이유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모든 성품, 모든 본성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주일공동체예배에서 골로새 교회 사람들이 가장 고민했을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것은 '이것으로 충분할까?'였다고 말씀드렸어요.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이웃을 이웃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다 되는 걸까?' 이 문제는 현재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있습니다. '이웃을 섬기는 일만으로 충분할까?' '서로 사랑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일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질문에 고민을 더해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무엇인가를 찾죠. 그것이 대부분 맹목적인 종교성이나 교리적이고 의식적인 문자적 율법으로 치우치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가요?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듯이 그리스도의 옷에 있어 완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족합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복을 받고요. 사랑을 품은 사람에게 길이 열려요. 사랑이 긍휼을 낳고, 사랑이 인내를 이끕니다. 사랑하면 모든 이들이 내가 제자인 줄 알게 되죠. 그래서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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