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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52 - ‘너 안에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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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덧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장이 되었네요.
바울은 5장에서부터 성령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16절부터죠.
전 장이 개인적 부분에 집중했다면,
6장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언급하죠.
그런 의미에서 첫 단어,
‘형제자매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장면은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언어들이 있죠.
그중에 ‘형제, 자매’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쉽게 사용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호칭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형제, 혹은 자매는
주로 혈연관계에 있는 이들을 칭하는 호칭이기 때문이죠.
이런 해석은 틀리지 않습니다.
헬라어에서 ‘형제’라고 부르는 단어, [아델포스]는 
‘연합하다’는 뜻의 결합 접두사 [아]와
어미의 ‘태’ 혹은 ‘자궁’을 뜻하는 [델포스]의 합성어죠.
그러니까 혈연관계가 맞습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이
혈연지간이 아닌 이들을 형제나 자매로 부르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겠죠.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생명, 모든 이들을
혈연관계와 같은 긴밀한 관계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출발이 같다고 할까요?
아니면 같은 출신이라고 할까요?
모든 생명은 같은 태에서 출발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함께
평등과 나눔, 이웃 사랑에까지 이르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고백이 되는 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창조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들은,
그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들과의 관계성을 가지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타인을 보는 시각입니다.
이웃사랑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고,
공평과 정의를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핵심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웃이 죄에 빠지면 
성령의 사람은 그를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가 죄에 빠졌는지,
혹은 누가 어려움을 당했는지 잘 알거든요.
이제 그를 도울 것인가? 지나칠 것인가? 는
어쩌면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은 우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바울은 느닷없이 이웃이 아닌 나의 문제를 언급하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요.
얼핏 이웃이 죄에 빠진 것과
나를 돌아보는 일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싶습니다.
왜 대뜸 이웃의 죄와 나의 넘어짐을 연결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어쩌면 형제, 자매라고 부른 
그 기독교의 핵심적인 출발과 연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나도 닮은 사람이고, 나도 그의 형제니까요.
마치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나의 어려움처럼 느껴지듯,
내 자식의 부끄러움이 나의 부끄러움처럼 느껴지듯 말이죠.

이는 단순히 이웃을 돕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마음이 선하고, 어질어서만이 아니에요.
진짜 이웃을 향하고, 마음을 쓰는 이유는,
그 이웃에게서 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이유는,
‘너에게서 나를 발견한다’고 고백하기 때문이에요.
‘네 안에 내가 있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안에 내가 있기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비난에만 머물지 마세요.
손가락질하고 분노하고 지적질하는 데만 머물지 마세요.
비난에 그치는 사람은 똑같은 비난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욕하다가 똑같은 사람 된다’는 말처럼 말이죠.
싫으면 고쳐야 하고,
나쁘면 바꿔야 하고,
어지러우면 정돈해야 합니다.
소리치고 비난하고 욕한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우리가 형제와 자매라고 이웃을 부르는 것은,
비난하고 소리치는데 그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내가 함께 하겠다고,
그것이 나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처신이죠.

오늘도 많은 이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들은 다 타인이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 속에서 나를 봅니다.
나의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그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심장이
이웃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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