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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54 -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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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4~5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추석 명절 아침이에요. 이 시간 멀리 미국에서는 고작 7개월 된 노아의 뇌수술이 진행 중입니다. 이 묵상이 마치는 시간쯤 수술도 끝날 것 같아요. 어젯밤부터 시작한 수술입니다. 힘겹고 무겁게 추석의 아침을 맞이한 노아 가족이지만, 그래서 더 감사가 넘치고 기쁨과 웃음이 넘치는 한가위 하루가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알잖아요?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지 않으시는 주님의 손길은,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을, 괴로운 마음 대신 찬송을 주실 것을요.

오늘 이 아침에 묵상하는 여러분 모두에게도 동일한 은혜 있기를 빕니다. 추수한 곡식 앞에, 그 결과 앞에서 감사로 응답하는 한가위처럼,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 그 선하신 인도하심에 감사와 찬송으로 보내는 명절 되시길 빕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하면 아마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그는 탁월한 철학자이자 지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수많은 명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을 꼽자면, 그것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일 거예요. 사실 이 말을 그가 처음 한 것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가 사용함으로 더 알려진 말이니 우리는 그냥 그가 말한 것으로 두기로 하죠.

소크라테스의 깊은 철학적 안목을 따라갈 수 없는 저는, 그가 자주 사용했던, 그리고 마지막까지 외쳤던 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얻은 지혜, 그의 철학의 기반이, ‘모른다’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했던 농담 가운데, 지금 생각하면 아재 개그 같은 말로 이런 말이 있었어요.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 파악을 하고,
수학을 배웠으면 분수를 알아야 하고,
철학을 배웠으면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


말장난같이 낄낄대며 말했던 이 말이 사실 곱씹어보면 참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모른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철학인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너 자신을 위해 울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 흐름은 오늘 본문에까지 이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자기 일을 살펴보라’고 말하죠. 어쩌면 같은 의미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무지, 즉 모른다는 것에는 한 가지 선이 있어요. 자신의 선을 지키라는 의미의 선이죠.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이의 선이기도 합니다. 마치 숲을 바라보는 것과 그 안의 나무를 바라보는 차이의 선이기도 하죠.

문제는, 우리가 숲이 아닌 그 나무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나무가 세워져 주님의 숲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로 본다면 바울이 자신을 살피는 것, 즉 가장 지혜로운 우리의 앎은, 나의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온다할지라도 말이죠.

우리의 삶이 괴로운 이유는 미래가 안 보여서죠. 큰 그림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꿈을 꿔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의 삶이 필요합니다. 내 하루, 내 작은 생각, 내 작은 습관, 내 일상이 모여서 나의 미래가 되고, 나의 꿈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는 자기의 맡겨진 짐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짐을 불편해해요. 더 나은 짐을 찾기도 하죠. 더 나은 환경과 상황을 그리워합니다. 절망은 여기서 나와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말이죠. 오늘 나의 짐이 무엇인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 짐이 어떻게 변모해갈지 우리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죠.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부여잡고 걷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임합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도 걸었던 아브라함을 인도하셨듯이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사랑하세요. 주어진 것에 감사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지고 가세요. 그런 하루하루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 것이고, 언젠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열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의 시작은 바로 오늘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고백처럼, 내일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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