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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59 -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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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7~18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좋은 아침입니다.

그런 말이 있죠?
“~~ 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

오래전, TV광고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죠.
이 말은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부분에서 적용이 가능한 명언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요.
물론 너무 쉽게 적용하기도 해서 탈이기도 하지만
같은 상황, 같은 환경에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늘이 우리에게 그렇습니다.
주어진 오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불평보다는 감사로,
두려움보다는 기대로,
힘겨움보다는 즐거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의 나날이 연속이죠.
삶이 쉽지 않아요.
많은 일들과 부담들이 지어지죠.
그런데 그 어려움과 힘듦 가운데는
외부적인 환경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지게 하는
부담이 훨씬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고요.

오늘을 열면서 나를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굳이 나에게 힘든 짐을 지우면서 시작하는
오늘이 아니길 빕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그래도 나쁜 예측보다는 기대의 예측이길 빌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시간 앞에 섰다면,
그래도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되시길 빌어요.


반세기 전, 남태평양의 어느 작은 섬에서
미국의 사회과학자들이 중요한 실험을 시작했답니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어요.
동떨어진 섬으로 낙후된 환경과 
변변한 교육 지원도 없이 청소년들은 방치되고 
경제적 상황은 그야말로 재앙이었습니다.
범죄와 중독자들이 들끓고, 
심지어 정신질환자들의 소굴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사회과학자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찾아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추적하고,
그들의 성장을 연구하며
왜 이 섬이 불행한 섬이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는 대 실패로 끝났습니다.
원인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고
따라서 결과는 도출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실패한 연구에서 또 다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열악하고 낙후한 환경 속에서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당연한 결과의 과정을 걸었고,
절망과 비참한 삶을 이어받아
부정적이고 폭력적이며 거친 아이들로 자랐지만,
그런데 그 환경 속에서도
소위 정상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죠.
그것도 일반적이라고 하기에는 
더 뛰어난 아이들 72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똑같이 부모가 없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혹은 어려서부터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거친 삶을 이어온 아이들이지만,
물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수백 명의 청소년들 그 가운데서도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본래 이 연구의 목적은 이랬답니다.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그러나 연구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바뀌었데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엇이 인간을 성공으로 이끄는가?”

이 연구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답니다.
이렇게 바르고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에게서
공통점 하나를 발견한 거죠.
그 공통점은,
그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더라는 겁니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선생님이든, 친구든,
그들에게는 그렇게 기댈 언덕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더라는 겁니다.
특별한 교육 없이도,
좋은 환경이 없이도 말이죠.

상처는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어요.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픔은 내가 대신 질 테니 너는 아프지 말아라”
그것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는 절망, 자기 비하, 낮은 자존감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너를 이해한단다. 뼛속까지.. 내가 너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십자가의 용서이고, 구원이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에서 들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치유운동을 하는 박상미 씨가 그러더라고요.
재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데요.
그것은 “그랬구나”랍니다.
누군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해 줄 때
사람이 변한다고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착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착각하죠.
마치 이는 신의 지배처럼, 
무엇인가 지켜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심지어 재앙을 피하고자 두려워하는 존재로 하나님을 대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그 모든 오해를 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시고,
이해해 주신다는 거예요.
공감해 주시고, 받아주시고, 용서하시려고 오셨다는 점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귀를 여시고
이렇게 말씀하실 준비를 하시죠.
“그랬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분은 나를 이해하시려고 오셨어요.
뭔가 규칙을 지키는 감시자로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요.
내 편이 되어 주시기 위해 오셨어요.
지적질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요.
공감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려고 오셨어요.
평가하고 구분 지어 당락을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요.
신앙은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믿어야 하고, 그 긍휼을 알아야 하죠.

우리는 그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종교가 아닌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기 원해요.
나를 대신하신 그 사랑,
나를 이해하신 그 은혜,
나를 용서하신 그 긍휼,
그것이 우리 믿음의 근거요 변화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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