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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51 -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 차는 비밀이 있습니다.


갈5:24~26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 아침이네요.

일주일 동안 삶의 여정에서 수고한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꿀과 같은 평안함으로 은혜 주시길 빕니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란드 러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충동이 있다.
하나는 소유의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의 충동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들의 모든 다툼과 분쟁은
소유의 충동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반면, 창조의 충동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만들고 세워가는 충동이에요.
예술가의 창의력 같은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창조의 능력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본질적으로 
남을 위한 것입니다.
곧 우리를 위한 것이죠.
우리와 나누고, 우리에게 권리를 주시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니까요.
우리 안에 있는 창조의 충동은 그렇게 
늘 누군가와 협력하고, 나누고, 돕는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해요.
그렇게 주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원리가
우리 인간에게 심겨 있다는 것이죠.

동양의 철학자 노자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천지도 부쟁이선승 天之道 不爭而善勝
하늘의 법칙은 다투지 않는데도 잘 이긴다.

아마도 노자의 제자들은
왜 인간사에 다툼이 그리 많고, 경쟁이 있는지를
노자에게 주로 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노자는
남과 싸우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그의 글에 많이 담고 있어요.

그의 책 도덕경에 보면
부쟁지덕(不爭之德) - 남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능력 - 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서 그는 하늘의 법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낳되 소유하지 않고, 
기르되 의지하지 않으며, 
키우되 지배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또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길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아요.
육에 속한 길과 성령에 속한 길이 그것입니다.
이는 러셀의 소유의 충동과 창조의 충동으로 표현해도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노자의 주장처럼
하늘의 법칙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도 합니다.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나누고 베풀며 살라고 말이죠.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불렀던 찬양이 있어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에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 차네

움켜잡으면 얻는 것 맞습니다.
소유욕이 발동하면 가질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는 분쟁과 다툼과 갈등이 있어요.
우리는 그것으로 소모되는 잃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돈을 얻고 건강을 잃는 것과 같이 말이죠.
그러나 나누고 베풀고 돕는 손길은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버리지만
결국 가득 찬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성령 안에는 그런 비밀이 있습니다.
죽으면 사는 부활의 능력이,
나누면 얻는 은혜의 통로가,
버리면 채우시는 축복의 원리가,
그 성령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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