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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58 - 내가 바뀌면 남도, 상황도, 환경도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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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4~16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부터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네요.
건강관리가 필요합니다.

‘더워서 죽겠다’
이런 소리가 차지하던 입에서는
이제 춥다는 소리가 나오네요.
영원할 것 같던 더위는 어느새 물러가고,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더위와 싸우고,
힘겨워하며,
심지어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투정하던 것이 조금 전인데
지금은 그 반대로 돌아서 있는 나를 보면,
참 세상 부질없음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인생에 중요한 것처럼,
죽고 못 살 일처럼 여기던 것도 한순간이고,
그렇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스트레스받던 일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한두 번이 아니죠.
그럼에도 우리는 그 지나갈 것들을 붙들고,
오늘도 여전히 씨름하고 있으니
참 슬프기 그지없어요.

갈라디아서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글을 정리하면서
우리에게 본질로 돌아갈 것을 말하죠.
그것은 우리가 자랑할 것이 십자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것저것 자랑하고 떠들어봐야,
아무리 이런저런 불평하고 스트레스받아봐야,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요.
마치 신기루 같은 것들이죠.
오직 남아있는 것은 십자가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죽을 때까지 지킬 것 같던 자존심,
움켜 잡으면 세상을 얻을 것 같던 욕심,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다해하는 열심조차도,
다 지나고 나면 그것이 그거예요.
그렇게 모질게 사람들에게 상처 주며 살아도,
그렇게 애를 쓰며 바둥거리며 살아도,
지나고 나면 거기서 거기예요.
그때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오죠.

“내가 왜 그리도 바둥거리며 살았을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부둥켜안고 살았지?”

TV에서 홈쇼핑 광고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광고를 보다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냥 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금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죠.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고, 
정말 사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해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마감 카운트가 개시되면 그 마음은 더 조급해지죠.

그런데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다시금 생각하면 그게 참, 
아무것도 아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왜 필요하다고 느꼈나 싶죠.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열을 올렸나 싶고요.
그렇게 새로운 날이 새로운 마음을 줍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부질없는 것에 목을 매는 삶에서 해방되는 길,
십자가를 자랑하며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라고요.

이는 마치 고린도후서 5장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나에게 인생이 다시 주어진다면…
청소년기로 돌아간다면?
어제의 시간이 다시 온다면?
아마도 다른 선택, 다른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죠.
지나고 보니 아는 것이 있죠.
어쩌면 지났기 때문에 알 수도 있어요.
그만큼 새로운 시간은 우리에게 다른 기회를 제공하죠.

바울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지도 몰라요.
어제의 나로 살지 않고,
오늘의 나로 다시 살아가기를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새롭게 살 기회를 말이죠.
마치 내게 인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듯 말이죠.
비록 그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러나 새로운 기회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여전하고,
다시 시작할 기회 또한 충분하죠.
어제가 아닌 오늘의 새로운 나로 산다면 말이죠.
마치 오늘을 내가 창조된 그때로 다시 시작한다면 말입니다.

이 아침을 이렇게 맞이하면 좋겠어요.
어제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나로 사는 것 말이에요.
거기서 기회가 생기고, 
거기서 변화가 생깁니다.
그 변화는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성숙을 가져오죠.
십자가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어요.
새롭게 창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실래요?
어제와 같은 성질과 성격으로,
어제와 같은 분위기에, 기분으로,
어제와 같은 습관과 버릇으로 사시겠어요?
아니면 
다시 기회가 주어진 듯 사시겠어요?

성숙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남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는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바뀌면 남도, 상황도, 환경도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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