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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44 - 행복할 수 있는 것도 능력입니다.


갈4:28~31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갑자기, 
새벽에 일어난 저를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어제는 무척 피곤했었거든요.
그런데도 새벽에 눈이 떠졌습니다.
꾸준히 지켜온 묵상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죠.
아무것도 아닌데,
왠지 그런 자신이 대견스러워 보였어요.
그래서 칭찬해 주기로 했습니다.
‘토닥토닥.. 잘했어..’


우리는 칭찬에 인색하죠.
특별히 자신에게는 더욱 그래요.
오늘도 우리는 또 일어나고,
또 일을 하고,
또 맡겨진 것들을 수행해 나갈 거예요.
누가 뭐라든,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만들든,
우리는 오늘을 삽니다.
대견하게도…
그런 자신을 칭찬하며 
오늘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삭과 이스마엘을 빗대어
은혜와 율법을 설명한 바울은
마지막 결론처럼,
자유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이는 마치 이런 것과 같아요.
시험 보기 전의 불안과 걱정, 염려 등이
우리의 마음을 압도할 때가 있죠.
그런데 그 시험이 끝났어요.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안과 걱정이 계속 있다면 어떨까요?
시험이 끝나면 결과가 걱정,
결과가 나오면 그다음 시험이 걱정,
그렇게 나를 옭아매는 일들만 품는 이들이 있어요.
마치 박해하듯, 고문하듯 말이죠.
그런데 은혜는 자유라고 말합니다.
시험이 끝났다고요.
이제 나의 올무는 풀렸다고요.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요?
'자유…'
우리는 마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마음먹은 대로 말이죠.
이것이 사전적인 의미예요.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해 볼까요?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마음먹은 대로 성적이 나와요?
마음먹은 대로 하늘을 납니까?
마음먹은 대로 부자가 될까요?
이 마음먹은 대로, 내 마음대로가 쉽지 않아요.

자유에 대해 고민했던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상태를 자기에서 개시하는 능력’이라고요.
말이 너무 어렵죠?
왜 철학자들은 말을 그리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쉽게 말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는 뜻이에요.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것은,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고등학교 친구 중에 이런 아이가 있었어요.
이 친구는 좀 뭐라고 할까요.
특별한 아이였어요.
제가 좀 옛날 사람이니까 

당시 학교 문화는 강압적이었죠.
학생들이 주도하기보다는 선생님들이 주도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자기 마음대로였습니다.
방과 후에 자율학습시간이 있었는데요.
말이 자율이지 강제로 집에 안 보내고 공부시키는 시간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는 그냥 집에 갔어요.
그런데도 선생님들이 아무 말 못 하는 것은,
그 친구가 시험만 보면 1등 하는 친구였거든요.
저는 말로 선생님을 이겨먹는 학생을 그때 처음 봤어요.
아무튼 그런 친굽니다.
얼마나 괴짜냐면,
대학에 합격을 했어요.
그것도 일류대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안 가고 재수를 했어요.
끝내 대학 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했는데 순탄했을까요?
툭하면 빠지고, 툭하면 여행 가고 하니 누가 좋아해요?
그렇게 그 친구는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어요.
그리고 결혼했고,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수녀가 되자
그 여동생과 결혼을 했어요.
가장으로서는 최악이었죠.
갑자기 연락도 없이 배낭여행을 한 달씩 떠나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어느 날 아빠에게
뭘 사달라고 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가 돈이 없었던 거죠.
딸아이가 사달라는 그 작은 것을 못 사줬데요.
갑자기 그 친구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자유로운 인생인 줄 알았는데
딸아이 과자 하나 사줄 수 있는 자유가 없더래요.
그리고 깨달았답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구나’
‘내가 마음먹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구나’

어쩌면 우리가 불평하는 이유는,
우리가 기뻐할 자유가 없어서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우리가 투정 부리고, 짜증 내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고 이해할 자유가 없어서인지도 모르죠.
많은 이들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해요.
그런데 행복할 자유가 없어요.
왜냐하면 행복할 수 있는 능력,
행복할 마음을 키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지 못해서죠.
그래서 자유가 없는지도 몰라요.

행복할 수 있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만들 수 있어야 하죠.
신앙이 쉬워 보이죠?
마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쉬워 보이듯이 말이죠.
‘뭐 운동하면 근육 만들어지잖아?’
‘누구나 운동할 수 있잖아?’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운동할 것처럼 생각하시죠?
그렇게 쉬워 보여서 운동 안 하시잖아요?
그렇게 걸을 자유, 뛸 자유, 건강할 자유를 점점 잃죠.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은혜로울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 신앙생활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할 자유를 얻는 과정,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도울 수 있는 자유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이 능력이 되고, 그것이 자산이 되죠.

행복할 자유 있으신가요?
감사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세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어요.
이제 우리는 그 자유를 누려서 능력으로 만들어야 하죠.
행복할 자유, 

감사할 자유, 

기뻐할 자유,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빕니다.

 

아~ 아까 그 친구, 지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후 갑자기 공부하더니 세무사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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