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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41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갈4:12~14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게 해를 입힌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왠지 그리운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아침이네요.
아침마다 기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슴에 품은 이들을 위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가족들의 얼굴이 다 떠오르고,
가슴 저미도록 보고 싶은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한가득 사랑을 담아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아마도 바울 역시
오늘 본문을 쓰는 그날,
저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움 가득, 사랑 가득,
그리고 저미는 아픔도 가득한 밤이지 않았을까요?
한껏 추억에 잠겨
갈라디아의 가족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들이 바울을 어떻게 대했는지,
바울 또한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글에서 여실히 드러나죠.

바울은 자신 있게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기 자랑이 아니에요.
그가 자신의 무엇을 닮으라고 말하는지는
그 앞부분의 이야기가 알려줍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죠.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그러니까 먼저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을 따라한 거죠.
그리고 그것을 닮으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2가지 상황이 있어요.
첫째는, 
갈라디아 교인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이전에 갈라디아 교인의 모습이
참 귀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바울은 지금 그것을 상기시키고 있어요.
또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하죠.

바울은 그것을 13절 이후 설명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갔을 때
아마도 육체적으로 병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병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전도 여행 초기 전염병에 걸렸다고도 하고,
혹자는 바울이 지닌 육체적인 가시가 도졌을 것이라고 하기도 해요.
바울의 지병이 무엇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도 어떤 이는 안과적 질병이라고 추측하고,
다른 이들은 뇌전증(간질)과 같은 발작성 질병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어떤 병이든 전도자에게는 악재죠.
아마도 아프고 병든 몸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사람들은 ‘너나 잘하세요’라고 힐난할지도 모르죠.
게다가 발작성 질병이라면 더욱 신뢰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들은 바울의 아픔을 감싸주었습니다.
그의 연약함에 주목하기보다
그가 전한 메시지에 더 주목했던 것 같아요.

간혹 우리는 외모와 일을 동일시할 때가 있죠.
첫인상에 강한 영향을 받아요.
동가홍상(同價紅裳)라고 
같은 값이면 더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죠.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외모 때문에 그의 메시지를 놓친다면 어떨까요?
중요한 사람인데 겉모습을 보고 거부를 한다면요?
바울은 그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고 하죠.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바울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뜻밖에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메시지가 있었어요.
그것은 바울의 연약함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마치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가끔 연약한 제 모습으로 인해
사역을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 없는 내가 사랑을 외쳐도 되나?’
‘자격 없는 사람이 목회를 해도 되나?’
그때마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조용히 하던 일을 내려놓으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나 같은 것이 뭘 해?’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특별히 실수가 반복되고, 
오해와 아픔들이 생길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매번 설교할 때마다,
매번 기도할 때마다,
부족한 목사여서 죄송하고
아프고 연약한 목사여서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
잔잔한 주님의 음성에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그 은혜를 함께 나눠요.


“영석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오히려 부족해서 은혜이고,
오히려 연약해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매일 붙들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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