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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45 - 자유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아니라 사랑의 줄에 묶인 연입니다.


갈5: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에게 기도하라고 맡겨주신 분들을 위해
그 이름을 불러가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이 새벽을 열었습니다.
오늘따라 그 시간이 좀 길어졌습니다.
그리움 때문일까요?
코끝이 찡함과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동안 기도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귀하고 귀한 사랑하는 장로님들,
교회를 떠맡으며 세워주시는 그분들의 마음과 손길이
너무도 감사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우리 집사님들,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우리 청년들, 
해외에 있는 가족들과
교회를 거쳐 떠나간 마음 시린 이들까지,
특히 지금 병상에 있는 이들,
모든 분들이 행복하길 빕니다.
주님의 채우시는 축복과,
물 흐르듯 흐르는 은혜가 가득하시길 빕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덮인 삶을 사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릴 적, 저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늦둥이였던 저의 어린 시절이,
한창 목회의 일로 여념이 없는 나이셨던
아버지를 독차지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몇 가지 특별한 기억은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연’이에요.

어느 날, 아버지는 부챗살 같은 대나무와
한지, 그리고 풀 등을 가지고 오셨어요.
왜 연을 만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께서 직접 대나무를 손질하고,
문방구 풀이 아닌,
직접 쑨 하얀 풀을 가지고 오신 것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함께 만든 것은 방패연이었어요.
손재주가 많으셨던 아버지는
단숨에 뚝딱 만드셨던 것 같아요.
정말 그럴싸했습니다.
그때 만든 방패연이 저에게는 지금도
‘연’하면 그 모양이 기준이 될 만큼 멋졌습니다.

더 멋졌던 것은,
그 연을 들고 아버지와 함께 동산에 올라
연을 날리던 기억이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답던지,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 연이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동산에 올라
연을 날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애써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연을 잃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하루는 연을 날리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하늘을 나는 연을 놓아주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마치 연줄을 잡고 있는 제가,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고픈 연을
붙잡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을 더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었어요.
그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저는 나도 모르게 그 연줄을 놓아버렸습니다.
하늘 높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올라갈 연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저의 바람은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평화롭게 하늘을 유유히 날던 연은
제가 연줄을 놓자마자 요동을 치더니
땅에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기 때문이죠.
처참하게 망가진 연을 들고는
아버지 앞에서 세상 다 산 사람 모양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해 주신 아버지의 말씀과 함께요.
“연은 연줄에 묶여 있을 때 연인 거야~”

이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은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대학생 때였습니다.
영적인 멘토였던 목사님이 제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죄에서 자유,
다른 시선으로부터 자유,
형식과 의식으로부터 자유,
외모와 외형으로부터 자유,
그리고 이 말씀도 해 주셨어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 모든 것에서 풀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에 묶이는 것으로 끝난다.’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자유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마치 연이 연줄에 묶여있을 때 연이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묶일 때 진정한 자유가 되는 거예요.
바울은 믿음이 사랑을 통해 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사랑에 묶일 때
비로소 율법도 의미가 있고,
형식도, 외형도 의미가 있는 법이죠.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전13:2)고 했습니다.

다른 것에 종노릇 하지 마세요.
허망한 자존심에 종노릇 하지 마세요.
오직 사랑에 종노릇 하세요.
그 끈에 묶여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사랑의 끈에 묶여야 
미움에서도, 다툼에서도, 자존심 싸움에서도 자유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롭게 되는 거예요.

오늘도 사랑의 끈에 묶여 나는 연처럼
자유롭고 감사하고 기쁜 하루 살아내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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