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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36 - 나도 틀릴 수 있습니다.


갈3:28~29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평온한 새벽이네요.
역대급 강풍을 동반한 10호 태풍은
소멸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지나간 자리에는 아픈 흔적이 남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자리 뒤에는
언제나 흔적이 남습니다.
때론 깊이 패인 상처처럼,
흔적은 우리 삶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죠.
이제 그 시간 이후 또 다른 시간이 옵니다.
위로와 덮임의 시간입니다.
패인 자리가 새롭게 소생하고,
긁힌 자국은 서서히 재생되는 시간이죠.
아프고 쓰라린 마음에 주님의 시간이 오길 빕니다.
힘겹게 다시 일어서는 분들께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임하길 기도해요.
반드시 상처를 덮는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게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가장 강하게 제 가슴을 때리며 새겨졌던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제가 모든 생명이 똑같다는 것을 알려주셨거든요.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서 똑같은 자녀고,
모든 생명이 주님의 사랑에 똑같이 거한다는 생각이
저의 믿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편견이 있고,
차별적인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던 모양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은
자신들에게는 자존감의 문제일 테지만
타인에게는 극심한 차별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차별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라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죠.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동원하여
모든 가치 판단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자신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죠.
나를 떠나 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것에 충실한 것은
어쩌면 창조의 진리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옳다고 느끼는 데 있어요.
내 생각이 옳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팩트라고 여길 때 차별이 발생합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까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나는 공정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차별이다’라고요.

어느 순간,
내가 모든 기준이 되고,
내가 심판자가 되고, 
나로 인해 세상의 가치가 평가되는 순간,
그것이 극심한 차별을 발생시키죠.
차별은 대단한 이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차별은 어떤 국가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단지, 내 감정만이 옳다고 느낄 때,
내가 한 생각이 진리라고,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주장할 때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죠.

나도 틀릴 수 있습니다.
내 감정이 늘 옳은 것은 아니에요.
나의 기억이 잘못될 수도 있고,
내가 본 것이 단편적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한 경험이,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배운 것이 영원한 진리가 될 수도 없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도,
그분께 은혜를 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손을 내미는 것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사랑은,
여기서 출발하죠.
나도 틀릴 수 있다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합니다.
여기에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대화를 해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하죠.
여기에는 어떤 성향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착하거나 순하거나 혹은 재능도 필요 없습니다.
이 유형을 가르는 유일한 것은,
바로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진짜라고 우기다가 
내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 참 민망하죠?
복받치는 감정에 한바탕 쏟아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잘못 이해해서 멋쩍은 경우 있으셨어요?
모든 용서에,
모든 화해에,
모든 회개에,
반드시 동원되는 우리의 자각,
‘나도 틀릴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내 경험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타인을 향한 우리의 사랑,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
그 출발이 이것이죠.
‘나도 틀릴 수 있다.’
거기서 하나 됨이 나오고,
거기서 연합이 나와요.
거기서 복음이 활동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이 진리를 깨달았으면 합니다.
아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했으면 해요.
‘나도 틀릴 수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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