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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37 - 멈추지 마세요. 우리는 더 자랄 수 있습니다.


갈4:1~3
내가 또 말합니다. 유업을 이을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때까지는 보호자와 관리인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조금 늦게 인사드립니다.
이 시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한번 보시겠어요?
이끼 낀 듯 하얀 구름이 뒤덮여있지만
그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이
마치 물을 많이 머금은 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기분을 맑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가을 내음이 풍깁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라고 성장하는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 내일도 주어질 거예요.
그렇게 어제의 나로 멈추지 않고,
오늘은 또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만나겠죠.
대견한 나를 기대하는 오늘이길 빕니다.

율법의 역할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4장에서도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율법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간의 흐름으로 설명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율법은 미숙한 어린아이들이 
일정한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일정한 규율에 따라 지배함을 받아야
안전하고, 온전한 적응을 하듯
율법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죠.

이것을 종에 비유해요.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당시 사회의 
문화적 정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가정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까지는
종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모든 권리가 부모에게 있었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었죠.
그러다 성인이 되면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후견인의 지배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셈이죠.

아들이 자라기까지 종의 취급을 받았던 사실은
또 다른 성경에서도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자신의 종을 위해 예수님을 청한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죠.
군인에게 종은 그저 물건 취급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종 하나를 위해 애를 씁니다.
사실 이것이 정황상 기이한 장면이에요.
그러나 그 종이라고 번역된 단어 파이스(παῖς)가 
아들이라고도 번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른 이해가 가능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율법이 유치하다고까지 말하죠.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율법이 유치해서가 아닙니다.
어찌 어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이 유치할 수 있겠어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관찰해 보신 적 있으시죠?
아이들의 비유를 다 맞춰주고,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보면 겉에서 보기에 좀 우습기까지 합니다.
까꿍질에, 목소리까지 변해가며 
어른들이 재롱을 피우죠.
그렇다고 그런 자세가 유치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사랑이죠.
어른에서 아이로 눈을 맞추는 사랑 말이죠.

그런데 이런 행동이, 이런 교육이
유치해지는 단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린아이에서 자라나지 않을 때에요.
나이가 먹었는데도 그런 행동의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은 유치한 것이 되죠.
이제 알아들을만한데도 재롱질을 한다면
그것은 정말 유치한 것이 돼요.
수학을 할 나이에 산수를 한다면,
자발적으로 할 나이에 강압적으로 가르친다면,
그렇다면 유치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라나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멈추면 안 돼요.
우리에게는 계속적으로 새로운 시간이 주어지고,
새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과거의 은혜로,
옛 추억의 신앙으로 오늘을 살 수 없어요.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우리는 계속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제자들과 올라가셨을 때
그 광경과 모습이 얼마나 환상적이었던지
제자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죠.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좋은 자리가 있으면 머물려 하죠.
좋은 일이 주어지면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죠.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경험하면
그 은혜로 끝난 것처럼,
다시는 그 은혜가 오지 않을 것처럼,
주구장천 그 은혜만을 곱씹고 살려고 합니다.
주신 은혜에 만족하는 것은 분명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은혜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 또한 분명 아닙니다.
반드시 새로운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더 부어주실 것이고요.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란다면 말이죠.

그래서 멈추면 안 됩니다.
아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성장할 분량이 남아 있어요.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성장과 비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는 대로 주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이고,
우리가 마음을 넓히는 대로 그 사랑을 담게 될 거예요.
그러니 멈추지 마세요.
우리의 키는 멈추었을지 몰라도,
우리의 영성은 끝까지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지능은 쇠퇴할지 몰라도,
우리의 사랑은 끝까지 커져야 해요.

멈추지 마세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의 믿음은 자랄 것입니다.
믿음대로 더 커질 거예요.
커진 만큼 더 많은 은혜가 담길 거예요.
그렇게 멈추지 않는 영성이 자라는 오늘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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