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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38 - 다 때가 있습니다.


갈4:4~5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선선함을 넘어 
쌀쌀함이 느껴지는 아침이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은 무심하게
지나갑니다.
떠나가는 여름을 잡을 수가 없네요.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가을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가 오죠.

바울은 때가 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하죠.
때가 ‘왔다’가 아니라 ‘찼다’고 한 이유는,
원어 번역상의 문제 때문입니다.
원어 그래도 번역하면,
‘때의 충만함이 이르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한이 가득 차서 때가 이른 것을 말하죠.
마치 여름이라는 기간이 다 차자
가을이 오듯이 말이죠.

어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자라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장성함도 이 충만함과 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때를 기다리고 그 시간이 닿을 때
그때, 우리의 믿음은 결과를 보게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기다림이
하나의 귀중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떠오르는 전도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 묵상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도서 3장의 말씀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인디언 속담인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


하나님의 시간은 결국 하나님의 시간으로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할 것만 같은 지금의 고통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는,
때가 차면 그때에 맞는 새로운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는 고통을 막을 수도 없지만
가는 고통을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기쁨의 순간 또한 마음대로 부를 수 없지만
마음대로 막을 수도 없어요.
그렇게 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쌀쌀한 공기를 대하며
덥다고 불평했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추운 겨울이 오면 또 춥다고 불평하겠죠?
불평이야 자유입니다.
그것을 꼭 나쁘다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불평의 시간이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에게 다 때가 있다는 것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냇가의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때도 그렇게 여름과 겨울을 통해
성장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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