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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32 - 부끄러운 줄 모르면 답이 없습니다.


갈3:19~20
그러면 율법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약속을 받으신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개자의 손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개자는 한쪽에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금 현재 태풍은 우리나라 남부지역을 지나고 있네요.
실시간이어서 정확한 피해 상황은 알 수 없는데요.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재난 앞에서 속절없는 우리들이죠.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이 아침을 좋은 아침으로 만들기 위해 기도합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새가 우리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태풍에 많은 것이 쓰러지지만,
우리의 마음마저 쓰러뜨릴 수는 없어요.
모든 이에게 평화가 임하는 아침이길 빕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율법의 목적에 대해 설명합니다.
새번역은 ‘범죄들 때문’이라는 좀 애매한 말로 번역해 놓았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려고’라는 뜻이 됩니다.
보통 ‘죄’라고 하면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를 주로 사용하죠.
그런데 여기 쓰인 헬라어 단어는 파라바시스(παράβασις)에요.
이 단어의 뜻이 요즘 말로 딱 맞는 말이 있어요.
선을 넘는 거죠.
아마도 번역자들이 지금 번역했다면,
이렇게 번역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선을 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율법이 있는 것이다’라고요.
 
모든 것에는 분량이 있어요.
모든 물건이 다 만들어진 목적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창조의 목적이 있죠.
이를 사명이라고 해도 될까요?
마치 머리 위를 나는 새를 쫓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니라
그 새가 우리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듯, 다 각자의 자리가 있죠.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거예요.
부끄러움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감정입니다.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답니다.
‘학문을 닦고 인격을 수양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무엇이냐?’고 말이죠.
그때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죠?
“부끄러움을 아는 것(行己有恥)이다”라고요.

지금 우리는 혼돈의 사회에 사는 것 같아요.
마치 창조 이전, 공허와 혼돈의 땅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오는 사회입니다.
코로나19는 호흡기와 폐만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과 영성까지 송두리째 감염시키는 것처럼,
변종의 바이러스들이 창궐하는 느낌을 받는 지금입니다.
저만 그런 느낌일까요?

참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남을 죽여도 부끄럼이 없어요.
대놓고 장사 질을 하고 욕망과 욕심을 다 드러내도 부끄럼이 없어요.
선한 성경을 들어 자신의 이기심에 사용해도,
생명을 놓고 돈과 권리로 장난을 쳐도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달라도,
공공재인 언론이 거짓 뉴스를 양산해도 부끄러운 줄을 몰라요.

부끄러움을 모르면 답이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진짜 죄는 인간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권리가 당연한 줄 알아요.
권세가 숫자나 세력에서 나오는 줄 알죠.
그런데 십자가의 진정한 힘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나옵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욕심덩어리이며,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십자가에서 발견할 때 비로소 능력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향해 다가가는 능력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세요.
우리는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알아 예수를 가슴에 담은 사람들입니다.
부끄러움을 잃으면 그 자리에서 욕심이 자라요.
부끄러움을 잃으면 영성도 잃어요.
부끄러운 내게 손을 내미신 주님의 은혜가 바로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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