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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31 - 약속은 믿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집니다.


갈3:15~18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사람의 관례를 예로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적법하게 유언을 작성해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을 말씀하실 때에, 마치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후손들에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너의 후손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하지 못합니다.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그것은 절대로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거저 주셨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제법 창밖에서 선선한 바람이 이네요.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무더위도
이제 한풀 꺾이는 듯합니다.
때가 되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이
그렇게 세월이 가는 것이겠죠?
아마 지금,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이 무거운 코로나19의 무게도 
우리가 걷는 세월의 시간을 가로막지 못하고
언젠간 뒤안길로 사라질 거예요.
우리를 아프게 했던 일들과,
우리를 괴롭혔던 문제들과 함께 말이죠.
어김없이 새로운 하루가 오듯,
어김없이 상처를 덮을 사랑이 옵니다.
오늘도 어제를 잊게 할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지길 빕니다.

지금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신학적 논리를 논증하고 있죠.
거짓 교사들은 주로 율법에 근거한 신앙을 강조했는데요.
이에 대해 바울은 새로운 율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죠.
구원은 율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율법론자들은 이렇게 반박하겠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는가?’라고 말이죠.
아마도 바울은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면서도
이런 반박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갈라디아서 서신은 그런 논증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써내려 가고 있죠.
여기서 바울이 율법보다 먼저였다고 주장하는 하나의 개념을 들고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이에요.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꺼내 듭니다.
창세기 곳곳에 등장하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약속 관계를 예로 들죠.
그중 하나를 꼽자면 창세기 17:7의 말씀이 될 거예요.
창 17:7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가운데 이미 그리스도가 있음을 주장하죠.
오늘 바울이 하는 논증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에 그리스도가 계셨다고 말이죠.

저는 단수니 복수니 하는 개념은 잘 모르겠습니다.
자손이라는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닌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는 것과,
그 약속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방적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우리의 약속은 상호 간에 이루어집니다.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약속이죠.
그래서 어느 한쪽이 지키지 않으면 파기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이와는 달랐어요.
그분은 우리와 합의한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이에요.
우리가 원해서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것도,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보내신 것도 일방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일방적인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없이,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특징이에요.
이제 우리는 그 약속이 이루어짐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마치 내일 아침이 반드시 올 것을 믿고 기다리듯이 말이죠.

우리가 주님을 떠나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의 약속이시니까요.
그 약속은 우리에 의해 파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약속이었으니까요.
그분은 자신이 하신 약속을 묵묵히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다만 그 약속이 드러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우리의 믿음이죠.
그 약속은 믿는 자에게서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자가 볼 수 있고,
찾는 자가 찾을 수 있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바울은 그 믿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시간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히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니까요.
어떤 바이러스도, 어떤 권력도,
우리의 배신과 떠남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만의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 약속이 귀합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영원하고, 변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바꾸지 못해요.
우리의 힘으로 그 약속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 스스로의 약속이니까요.
우리의 잘못과 죄조차도 그 약속을 없앨 수 없어요.
그것은 우리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니까요.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그 약속을 믿는 것뿐이죠.
믿는 자에게만 그 약속이 가치 있으니까요.
믿는 자에게만 그 약속이 보이니까요.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오늘이 지나면 어김없이 내일이 오듯,
어려움과 아픔이 지난 자리에 그분의 위로와 은혜가 넘치듯,
성실하게 약속을 실행하시는 그분을 믿는 자에게
그분의 약속은 성취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하루임을 기억하세요.
주님이 오래전부터 나를 위해 준비하신 하루임을 잊지 마세요.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값진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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