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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29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갈3:8~11
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는 것을 성경은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작이 반(Well begun is half done)이란 말이 있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액면 그대로 번역하면,
‘시작을 잘하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라는 뜻이 되겠죠?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
새롭게 준비된 한 주간 앞에 섰습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 모두 평안과 감사로 채워지길 빕니다.

2000년대 베스트셀러 가운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 켄 블랜차드(Kenneth H. Blanchard)는,
바다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육식동물인 범고래가 
3m씩 뛰어오르는 묘기를 보여주는 비밀이
조련사의 ‘칭찬’ 한 마디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칭찬 신드롬’을 몰고 왔죠.
칭찬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칭찬에 그만큼 인색했기 때문이었겠죠?

제가 어릴 적 학교에서는 시험이 많았습니다.
기말고사뿐 아니라 월말고사도 있었고,
심지어는 하루에 한 번씩 보는 쪽지시험도 있었어요.
왜 그리 시험이 많은지 학교생활은 온통 시험이었고,
그리고 늘 순위가 가려진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시험은 그만큼 부담스럽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요.
시험문제를 다 풀고 정답을 맞혀가는 과정에서
낙심하는 때가 많았어요.
몰랐던 문제를 틀리는 것은 그리 억울하지 않지만
알았던 문제를 실수로 틀리는 것은 많이 속상하죠.
그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시험문제가 어쩌면 우리를 틀리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꼭 문제에 이런 문항이 있었어요.
‘다음 중 아닌 게 아니지 않은 아닌 것은 무엇인가요?’
좀 과장되게 말했지만
문제를 틀어서 내는 경우들이 있었죠.
그것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틀리기를 바라시는구나!’
과한 생각이었을까요?

반면,
뜻하지 않은 시험 앞에 놓일 때도 있죠.
대학에 들어와 그룹 스터디를 하게 되었는데요.
하늘 같은 선배에게 헬라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매일 단어시험이 있었어요.
대학에 오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시험에 빠진 생활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스터디가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늘 그 선배에게 칭찬을 들었거든요.
제가 틀릴 때마다 그 선배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본래 헬라어가 어려워, 그 정도면 잘한 거야”
“잘하네~ 잘 따라오고 있어”

시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테스트니 유혹이니 그런 분류는 잘 모르겠고,
제가 경험한 두 가지 측면은 이것입니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시험과,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시험’이 있다고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시험은 저에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율법과 믿음의 차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바울은 오늘 분문에서,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율법이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시험이라는 뜻처럼 보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죠.
마치 이는,
믿음에 근거를 둔 사람은 의인으로 성장한다는 뜻처럼 들려요.
그러니까 내게 의로운 부분을 끌어내는 것이 믿음이라고요.

우리에게도 이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죠.
끊임없이 잘못된 점을 바라보고 지적하는 이가 있고,
수많은 잘못 가운데서도 잘하는 점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에게서 잘못을 찾아내려면 그리 큰 수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잘못이 흘려넘치고, 
실수가 늘 반복되니까요.
오히려 잘한 점을 찾아내기가 훨씬 어렵죠.

본래 법은 잘한 점을 찾아내지 않아요.
잘못한 점을 찾고, 그것을 밝히는 것이 법의 기준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와 반대입니다.
99%의 잘못 속에서 1%의 작은 선함에 주목하시고,
우리의 어두운 과거보다 앞으로의 시간에 더 기대하시죠. 
그렇게 우리를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시죠.
우리는 그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율법에 머문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 아래 놓이죠.
'죄를 지으면 어떡하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 눈을 피할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죄를 파헤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는 덮고, 우리 속의 작은 의로움을 찾아내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의 잘못에 집중하시기보다,
우리의 부족하고 작은 선함에 주목하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믿으시나요?
내게서 어둠보다 빛을 찾아내시는 분이심을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믿음의 길을 걸으면 좋겠습니다.
잘못한 점을 찾아내고 지적질하는 쉬운 길보다,
잘한 점에 초점을 맞추고, 칭찬하며 세워주는 우리들이길 빕니다.

우리의 삶은 믿음대로 갑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으면 우리의 삶도 율법에 얽매이고,
우리의 시선도, 우리의 입술도 율법대로 정죄하며 삽니다.
반면, 우리가 사랑의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죄 아래서 주눅 들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자유를 누리게 될 거예요.
또한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도,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아마 달라질 겁니다.
좋은 점만 찾고 말하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대접받은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도 사랑의 하나님 아래 놓인 하루이길 빕니다.
율법이 아닌 사랑을 믿는 하루 되길 기도합니다.
그 사랑에 녹아, 나도 긍휼과 사랑으로 사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이웃의 장점에 주목하는 하루,
칭찬의 입술로 사는 여러분의 하루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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