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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25 - 진짜 사랑의 힘을 믿으십니까?


갈2:17~18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죽음에서 부활이 시작되듯,
우리의 아픔은 또 다른 성장의 출발이 되죠.
저녁의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의 빛은 더 밝은 법입니다.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주위를 맴돕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비상식이 우리를 덮고요.
갈등과 대립, 간극과 양극화는 멈출 줄 모르고 치닫습니다.
그럼에도 이 아침이 오듯이,
그 수많은 어려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새로운 성장의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은 그렇게 쓰일 것입니다.
그러니 웃으세요.
오늘을 밝게 시작하는 우리 되길 빕니다.


바울은 새로운 영적 질서를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말이죠.
율법은 의롭게 하는 열쇠가 아니라 정죄의 수단임을 말하고,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할 길은 그리스도의 길임을 역설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선언은 거짓 교사들의 공격을 받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
우리 인간들의 도덕적 책임감을 약화시킨다고 느꼈죠.
가령,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그 구원을 값싸게 여기는 경향들이 우리에게 있죠.
아무것도 대가를 바라시지 않는 거저 주신 사랑이라고 하면,
그 사랑을 싸구려로 여깁니다.
차라리 뭔가 강요가 있고, 겁을 주듯 압력을 받아야
인간은 그제야 움직이고 꿈틀거리죠.
그러니 우리는 값없는 사랑, 그 은혜를 경험하기 어려워지죠.

주일성수에 대해 강조하고, 
율법적 법칙을 강조해야
더 모이고, 더 열심을 내는 연약함이 우리의 본모습입니다.
반대로 거저 주신 사랑, 
값없는 은혜를 말하면,
뭔가 우습게 여기는 경향들이 우리에게 다분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그렇게 반론하며 물고 늘어졌습니다.
게다가 바울의 값없는 은혜에 대한 논리를
그들은 우리의 죄와 연결해 공격했어요.
은혜가 작용하는 곳에는 죄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우리가 죄를 지어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용서가 있고,
마치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은혜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죠.

최근 스포츠계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폭행과 폭력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몰상식한 일들이 뜬금없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머리에 지배했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이죠.
“때리면 말을 잘 듣는다.”
“때려서 가르쳐야 성적이 오른다.”

우리는 대가에 익숙해 있죠.
공짜는 없다는 세상적 진리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의 논리는 정의처럼 받아들여지죠.
이런 기준 앞에서 사랑은 힘을 잃습니다.
거저 주시고, 희생하는 사랑은 그냥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죠.
말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행동은 정해진 규범을 따르는 것이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율법적 가치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런 율법적 익숙함들은
끝도 없이 많습니다.
주면 받아야 하고,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파야 하며,
억울함은 도저히 못 참고,
나도 남이 가진 만큼 가져야 하는,
그렇게 익숙한 공평은,
사랑이 아니라 율법에 가깝습니다.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고,
한 일은 꼭 생색을 내야 직성이 풀리고,
죽어서라도 보상은 꼭 받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십자가의 정의가 아니라 율법의 정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은 믿어지고,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습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율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아서 주일을 지키십니까?
아니면 그분을 사랑하셔서 주일을 지키시나요?
내가 드린 만큼, 
보인 정성만큼 그분이 돌려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분은 나의 모습과 상관없이 
나에게 좋은 것으로 늘 채워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나요?
어떤 것이 내가 믿는 믿음입니까?

유대의 율법을 나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에 익숙하니까요.
아무리 똑같은 예배여도 율법과 사랑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부모님이어도 압니다.
그것은 비즈니스 관계자들도 알아요.

우리의 믿음은 죄를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관건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기대할 것이,
내가 실수하고 잘못된 시간을 보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아니라
새롭고 아름답게 이끄실 그분의 손길이라는 것과 같아요.

진짜 사랑의 힘을 믿으십니까?
사랑하면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아시나요?
어떤 기준과 법칙으로도 할 수 없는
사랑이 이끄는 힘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에서 나오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내 안에 사랑이 나를 의롭게 합니다.
사랑이 모든 고통을 이기고,
사랑이 모든 아픔도 견디고,
사랑이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나를 의롭게 하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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