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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27 - 내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갈3:1~4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소식을 들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좋은 아침입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자연의 모든 이치를 다스리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눈앞의 고달픈 인생길처럼,

몰아치는 폭풍우와 비바람으로 생채기 난 마음을 달래기 어려울지라도,

회복시키시고 더 값진 것으로 채우실 주님을 기대할 수 있는

아침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리석다”
이 말은 매우 거칠고 모욕적인 말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네요.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네이버사전)
이 사전적 의미는 사실 좀 고상합니다.
어리석다는 단어의 의미에는 
훨씬 더 강한 독설이 담겨있으니까요.

헬라어로 ‘어리석다’는 아노에토이(ά́νοητοι)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이 단어는, ‘이해하다’, ‘깨닫다’라는 뜻의 노에오(νοεω)라는 말에,
부정접두사인 ‘아(ά́)’를 붙인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해하지 못한’, ‘깨달음이 없는’이란 뜻이 되죠.
그런데 이 ‘노에오’가 또 중요한 단어에 사용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회개’라는 단어예요.
헬라어로 회개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라고 합니다.
‘메타’라는 접두사는 여러 의미로 쓰입니다.
본래 사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여기서는 ‘~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죠.
그러니까 회개의 의미를 굳이 따지자면 ‘이제 알게 되었다’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이 ‘노에오’는 ‘앎’ ‘이해’ 깨달음’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 더 엄밀히 말하면 분별의 능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단어예요.
옳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르게 알 때,
아노에토이(어리석다)라는 말이 사용되죠.
속된 말 가운데 ‘똥오줌 못 가린다’는 말이 있죠?
아침부터 더러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다’가 딱 그런 의미의 말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무척 답답했던 모양이에요.
갈라디아 지역 교인들이 이렇게 쉽게 흔들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던 것 같아요.
그 때문에 화가 나 있었을까요?
3장에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어리석다’는 말은 3절에도 등장하네요.
그의 감정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죠.
2절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유가 율법을 지켜서인지, 
아니면 복음을 들어서인지 말이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의 질문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율법이든 복음이든 '성령'을 받았던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어요.
그러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는 거죠.
이것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외모로 나를 판단하시는 분입니까?
요즘 같은 팬데믹 상황에 이웃을 저버리면서까지
율법을 지키길 원하시는 분입니까?
‘공인된 죄인’이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들기 원하시는 분입니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편 가르며 싸우길 원하시는 분입니까?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고,
그것이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했습니다.(잠 9:10)
사도 요한은,
‘영생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어요.(요 17:3)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일까요?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이 아침, 이 질문과 함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떤 주님을 알고 있는지,
내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있는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분별하며 신앙생활하는지,
그 질문 속에서 성령이 임하시길 빕니다.
온전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우리 모두를 덮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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