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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12 - 괜찮아요. 나의 잘못도 하나님이 쓰시면 별이 됩니다.


갈1:15~16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토요일 아침이에요.
오랜만에 늦잠도 허락되는
평온하고 평강의 아침이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을 매일 읽으며
작은 단상들을 묵상이라는 이름으로 써 내려간 지,
올해로 34년째네요.
매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아침을 말씀과 함께하며
작은 노트에 써 내려가다,
컴퓨터에 기록하다,
이제는 인터넷 공간에 저장한지도
10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글과 함께 음성으로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예전의 글들을 가끔 꺼내 볼 때가 있어요.
차마 몇 줄 읽기조차 민망한 글들이 수두룩합니다.
때론 버리고 싶기도 하고,
때론 차라리 쓰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 싶을 만큼
부끄럼 가득합니다.
물론 오늘 적고 있는 이 글도 훗날의 나에게는
그만큼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버리지 않고,
용감하게(?) 공개하며 나누는 이유는
글이 훌륭해서도, 논리가 정연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이 부끄러움이 나의 성장의 지름길이기 때문이에요.

첫 술에 배부른 법 없다는 옛말이 있죠.
우리는 단번에 훌륭해질 수도, 
순간 높은 경지에 오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길은 늘 내 부끄럼을 먹고 길을 열어주죠.
나의 어리석음, 나의 실수, 그리고 잘못들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걸음씩 전진합니다.
그 어리석음이 부끄럽다고 빼 버리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도 없어지겠죠.
그래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글들은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숨기고 싶어 해요.
나의 치부는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죠.
되도록이면 좋은 것만 보이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마음일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그의 간증을 통해 
자신의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박해했던 일들과,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미 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그 사도로서의 권위를 흔들었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과거의 사실이었죠.
그러니 이 사실은 들추면 들출수록 그에게는 유리하지 않은 대목입니다.
게다가 갈라디아 지역은 이방 지역입니다.
이주한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본래 이방 땅입니다.
그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다는 표현은,
다른 말로 하면 이방인은 개돼지만도 못 하게 여기는 작자였다는 사실을 온 천하에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또한 치명적인 단점이자 치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를 당당히 밝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자신감도, 아니면 무슨 솔직함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알기 때문이죠.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잘못조차도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근본주의 유대교인이었던 자신을 부르셔서
이방 사람들을 위해 살게 하셨다고 고백하죠.
이는 다시 풀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방인을 개돼지 만도 못 하게 여기고,
업신여기며 무시했던 나를,
이방인들을 섬기고 세우고 사랑하는 자로 만드셨다고요.

누구나 말을 합니다.
말하는 것을 가지고 감동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을 하면,
그것은 감동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많았던 곳이기에 은혜가 더 빛나는 거죠.
마치 어두웠던 곳에 빛이 들어오면 더 밝은 법이듯이 말이죠.

우리의 잘못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우리의 실수를 너무 부끄러워 마세요.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우리의 잘못은 더 빛난 별이 되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우리의 실수는 더 값진 감동이 됩니다.
그러니 괜찮아요.
돌아보면 모든 것이 잘못과 실수로 뒤엉켜 있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돌아보면 다 아쉬워요.
우리는 그렇게 아쉬움과 잘못을 통해 새로운 곳으로 전진합니다.

나의 아집이 깨지면 더 무서운 순종이 되고요.
나의 잘못이 교정되면 더 빠른 성장을 이룹니다.
그렇게 나의 실수들은 주님의 도구가 되죠.
그러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요. 잠시 넘어져도.
부끄러운 과거를 먹고 아름다운 내가 만들어져 가니까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뭘 해도 오늘은 우리 인생에 귀하게 쓰임 받는 날이 될 거예요.
비록 삐딱한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도,
오히려 빛난 별이 되는 역사를 만드는 하루가 될 거예요.
그런 오늘을 귀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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