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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10 -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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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1:13~14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밤새 비가 내리네요.
멀리서 번개와 함께 천둥소리도 들립니다.
이미 많은 비 피해가 있었는데요.
또 다른 피해가 주어질까 걱정입니다.
어둠을 뚫고 아침이 오듯이
걱정과 염려를 뚫고 평안의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갈라디아서는 여러모로 특이합니다.
다른 바울의 편지에서 볼 수 없는 정보들이 있는데요.
마치 자서전을 읽는 것처럼
바울은 지난 일들을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회심 전의 자신에서부터,
회심하게 된 이유,
그리고 지금 사도로 서게 된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듯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먼저 그는,
자신의 잘못된 아집과 편견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데요.
회심 전에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때의 이야기죠.
그 고백이 필요했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회심한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한 이 회심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려주고 싶었을 거예요.
이미 바울의 회심은 그의 영적 거듭남을 의미하고,
새로 창조된 것을 의미한다고 우리 묵상했죠?
어쩌면 회심으로 그는,
거듭남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지금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회심 전의 바울은 유대교 신봉자였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그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신생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이단 분파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 교회를 ‘나사렛 이단’이라고 불렀죠.

그런데요.
바울은 왜 그리스도교회를 박해했을까요?
왜 그는 예수를 미워했을까요?
그리스도 교인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그들이 어떤 불법을 행해서,
어떤 분란을 일으켜서 그는 그들을 미워했던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울이 스스로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 답이 황당합니다.
그 답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서’였으니까요.
다른 말로 말하면 ‘유대교를 사랑해서’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저렴한 비유입니다.
축구 경기장에서는 종종 폭력사태가 일어납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을 대신해 팬들이 싸움이 일어나는 거죠.
이기고 지는 문제는 전쟁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면 앞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요.
“그들은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자신의 팀일까? 아니면 축구일까?”

유대교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의롭게 살아가는 것에 중점을 둔 종교입니다.
만약 메시아의 출현을 들었다면 당연히 가장 먼저 그분의 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들은, 아니 유대교의 신봉자였던 바울은
그분과 그분의 추종자들을 미워했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시골 출신이어서였을까요?
메시아라면 랍비 출신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었을까요?
그래서 나만도 못한 사람이 메시아되는 것은 싫었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움도 자라는 것을 느끼신 적 있나요?
무엇인가를 사랑하면 할수록
다른 무엇인가를 더욱 미워하는 경향 말입니다.
사랑을 외치면 외칠수록 미움도 자라는 아이러니,
어떤 종교를 말하기 전에,
우리의 교회들, 기독교의 모습은 어떨까요?
사랑을 외치며 무엇인가에는 증오를 키워가는,
사랑의 열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미움과 편견 또한 자라나는 모순이 우리에게는 없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에는 차별이 없어요.
사랑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입니다.
사랑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형상의 문제예요.
하나님을 닮은 형상 말이죠.
그래서 사랑은 어디서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모든 창조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하시는 일,
그분의 기다림조차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내하고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그분의 뜻까지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
기독교라는 종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사랑하는 것이지
우리 공동체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의 것에 집착할수록
우리는 남의 것을 경계합니다.
그래서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에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하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나를 사랑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고,
남을 사랑하는 이유도 또한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에요.
오늘도 그 사랑이 우리를 채우길 원합니다.
편견과 편협으로 오염된 사랑이 아니라,
풍성하고 충만한 사랑으로 오늘을 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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