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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11 - 그러나…


갈1:15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의 무서운 빗줄기가 오늘 이 새벽에는 잠잠하네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망연자실한 현장들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안타까움과 함께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연의 뜻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문부호를 끄집어내는 제 자신이
두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맹목적인 이해와 해석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 이때,
저의 믿음이 부족함을 고백하며
감옥에서 주님의 뜻을 찾았을 요셉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고, 측량 못할
주님의 위로하심과 인도하심이
아픔 가운데 있는 모든 이에게 온전히 임하기를 
조용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과 제목을 보고서 황당해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나마 본문도 15절의 ‘그러나’만을 적으려 하다가
그래도 15절 본문은 읽자 싶어 적어놓았습니다.
그 말인즉은, 오늘 묵상하고자 하는 본문은,
딱 한 마디, ‘그러나’라는 이야기죠.

왜 저는 ‘그러나’에 꽂혔을까요?
자신의 회심 전 상황을 조용히 고백하는 바울을 보았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사랑하였고,
그 때문에 또한 그리스도교를 미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고 조금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의 신념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나왔다고 믿었을 테죠.
어쩌면, 
그런 자신의 행동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뜻을 외치며 마녀 사냥을 하고,
자신의 편이 아닌 이들을 숙청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죠.
심지어는 제국주의의 선봉장으로 교회가 서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며 나와 다른 이들을 증오하고,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을 넘어
어느 집단의 이데올로기화 하는 것을 보면
바울의 유대교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도 없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권력이 압도적이라는 것이죠.
우리에게 흐르는 종교적인 열정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의 순종이라기보다
개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이끄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그 권력을 휘두르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의 사명으로 착각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는
웃지 못할 기막힌 일들이 우리 안에 벌어집니다.

이 아침에 이런 고백으로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나는 안 그랬을까?’
'목사직을 돈벌이로 생각하진 않았을까?'
'영혼을 생각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붙잡고 있지는 않았을까?'
'주님의 진정한 마음을 전하기보다
나의 철학을 강화하는 쪽으로 말씀을 왜곡하지는 않았을까?'

성공지향적이고, 결과 주의자였던 제게,
그래서 높은 완성도, 완벽한 짜임새의 예배 쇼에 몰입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센세이션에 몰두하던 제게,
주님의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가난한 말씀으로,
주님의 가난한 섬김으로 나를 돌이켜 세웠던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러나’였어요.

그렇게도 나만 생각하며 살던 저를,
‘그러나’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고,
그렇게도 성공에 목말라하던 저를,
‘그러나’ 하나님은 붙잡으셔서,
새로이 세워주셨습니다.

저는 신앙인에게 가장 위대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그러나’ 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두운 과거, 떨칠 수 없는 아픔, 교만했던 지난 일들,
그러나 하나님은 흰 눈처럼 씻기시고,
이 아침, 어둠을 밝히는 새벽빛처럼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러나’의 신앙이 있어요.
도무지 알 수 없고 이해 못할 현실 앞에서,
우리는 ‘그러나’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끝난 것 같은 인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그러나’의 신앙을 세워야 해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러나’의 신앙을 고백하게 만드시니까요.

모든 이들로부터 버림받은 나, ‘그러나’
상처와 현실 앞에 쓰러지고 깨진 나, ‘그러나’
무기력하게 벼랑 끝에 선 나,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판을 뒤집으실 수도 있어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방법으로
우리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말이죠.
그러니 여러분의 위기 때마다 외치세요.

‘그러나’

다 끝난 것 같다… 그러나
진 것 같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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