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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갈라디아서묵상일기

갈라디아서묵상 01 - 오직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갈 1:1)


새번역성경
1   사람들이 시켜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명하심으로써 사도가 된 나 바울이,


좋은 아침입니다.
새로운 아침,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는 이 시간을,
주님께서 은혜로 열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부터 새로이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서도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죠.
갈라디아란, 오늘날 터키 중부지역의 옛 지명인데요.
북부와 남부로 나뉠 만큼 터키 중앙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넓은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중동지역 쪽인 오른쪽이 갑바도기아였고,
유럽 그리스와 맞닿은 왼쪽이 아시아라 불리는 지역이었죠.

아무튼 바울은 이 지역과 연이 깊습니다.
그는 초대교회 선교사로서 
처음으로 이 지역을 전도여행지로 삼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수고로 인해 그 지역에는 여러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미 갈라디아서와 같은 편지를 여러 차례 썼습니다.
그런 그의 편지는 신약성경에 고스란히 담겨있죠.
그런 의미로 보면 갈라디아서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갈라디아서의 서두는 다릅니다.
보통의 바울 서신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나죠.
그의 몇몇 편지들을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고린도후서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에베소서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빌립보서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대체적으로 바울의 편지는 이와 유사하게 시작됩니다.
분명한 것은 한결같이 자신이 누구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는 것인데요.
유독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임을 강조하는 것 같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그분의 메시지를 선포할 자격이 있는 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반대로 그가 당시 많은 기독교인, 
혹은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정통 지도자의 자격을 의심받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초기 기독교를 탄압하던 인물이었고,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인물로 활동했지만
늘 자격을 의심받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어느 면에서는 수고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정작 인정받지는 못하는 억울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셈이죠.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 입장은 난처하고 괴로웠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처지에도 그는 매우 겸손하고 공손하게
자신의 자격을 어필하며 편지들을 쓰고 있었는데요.
그에 비하면 오늘 갈라디아서의 서두는 매우 다릅니다.
다짜고짜 그는 이렇게 말하죠.
‘사도의 권리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갈라디아서가 어떤 배경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편지를 쓸 때의 감정은 1절에서 읽히죠.
그는 매우 화가 나 있는 상태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너무 억울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본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이들 때문에 괴로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괴로움은 단순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가 당하는 오해와 억울은 한쪽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당연히 바울이 눈에 가시였겠죠?
그의 뿌리였던 정통 유대인들의 박해와 핍박도 만만찮아서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맞이하기도 하죠.
그뿐입니까?
그가 전도자가 되면서 로마제국의 탄압도 극심해졌죠.
이들의 저항만으로도 힘겨울 텐데,
내부에서도 저항이 생긴 셈이죠.
바울에 대한 반대들이 생기고 오해들이 생겼으니 그는 사면초가였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들은 반대자의 저항에는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합니다.
문제는 내가 믿었던, 나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
함께 고락을 같이했던 이들의 오해와 억측들이 가장 아프죠.
어쩌면 갈라디아서는 그런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때론 내 가슴을 열어 마음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죠.
억울해서 삶을 포기할 만큼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거짓이 더 진실처럼 여겨져서,
수고하는 일마다, 애쓰는 일마다 왜곡되고 오해받는 일이 많아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억울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마음 한편에 올라오는 악한 마음과 낙심은 더욱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은 다 아십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나의 잘못과 불의를 하나님은 다 아셔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왜곡되고 곡해되어도,
아무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진실이 묻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과 진실을 다 아십니다.
빛바랜 우리의 수고를 다 아시고,
아무도 모르게 행한 선행을 다 아시며,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사역들을 기억하시죠.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의 신실함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성실과 수고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록되기 때문이죠.
억울함에 마음 아픈 여러분을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온갖 권세와 힘으로 나의 진심을 짓이겨 부서져 없어져도,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다 아셔요.
그러니 오늘도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나세요.
불의가 주님 앞에서 드러나듯,
나의 진심도 주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오늘도 진실하게 사세요.

그 진실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실하게 사세요.

우리의 성실은 하나님의 가슴에 새겨집니다.
주님 앞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여러분들과 주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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