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인 죄는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2018. 10. 13. 07:19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반응형

민수기 16:1-11 고의적인 죄는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고라의 반역에 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라의 반역’은 유명한 사건이죠.
이 고라의 반역 사건은 구약의 여러 책에서 언급될 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반역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시대를 막론하고 크게 다가오죠.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들에게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지도력에 대한 도전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력에 저항하는 이들을 향한 주류세력에게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는 본문이기도 하죠.

일단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도력에 저항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도력을 잘못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도력을 부여받은 모세가 완전하다는 이야기도 아니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모세의 잘못을 다 덮을 수는 없습니다.
모세 또한 불완전한 지도자였음은
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은 지도자의 위치를 두둔하는 의미의 본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고라와 그의 일당들은 모세가 전권을 쥐고 흔드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일당들은 꽤나 이름 있는 자들이었으니 영향력도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의 불만은 왜 모세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죠.
이 반란은 기시감을 줍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이미 한 말이죠.
그들은 모세를 향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민수기12장에 나오는 말인데요.
저는 그 말씀을 며칠 전 묵상하면서
오히려 모세와 미리암을 이해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이 말에서보다 다른 것에서 찾았죠.
그들이 모세에게 반기를 든 시작이 모세의 아내인 구스여인이었는데요.
바로 그들의 차별적 시선이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응당 모세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서 아론과 미리암의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혹시 의아해하시는 분이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아론과 미리암이 말한 것에는 잘못이 없다고 느낀 이유가 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의 불만은 분명 모세의 자리에 대한 불만처럼 보입니다.
왜 모세만 지도자여야 하느냐?는 불만이죠.
왜 모세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느냐의 불만에서
그들의 욕심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시죠.
과연 이 아론과 미리암의 말이 틀린 말일까요?
정령 하나님은 모세와만 말씀을 하셔야 하나요?

죄 많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당연히 주님을 대면할 수도,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는 존재였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해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죠.
그런 의미로 본다면 아론과 미리암의 이야기가 잘못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라는 이렇게 모세에게 말하죠.

“온 회중 각자가 다 거룩하고,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다.”

이 말이 틀린 말입니까?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만인제사장이라고 말하는데요.
그것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주창한 것입니다.
그것과 고라의 말은 다르지 않습니다.

혹시 당혹스러우신가요?
그렇다면 왜 고라의 불만은 반역이 되는 것일까요?
아론과 미리암은 왜 징계를 받았을까요?
이 부분을 말하려면 성경을 조금 더 연결시켜 읽어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전장인 민수기 15장을 다시 읽어 보세요.
그제 저는 그 구절을 중심으로 묵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묵상해 보죠.

민수기15:30~31, "그러나 본토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일부러 죄를 지은 사람은 주를 모독한 것이므로, 그런 사람은 그의 백성 가운데서 쫓아내야 한다. 나 주의 말을 경멸하고 그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그런 사람은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 자기의 죄는 자기가 짊어져야 한다."

이 구절은 의도적인 죄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구약의 제사법에는 실수로 인한 죄에 대한 용서의 제사들이 있어요.
속죄제나 속건제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씻을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죄가 있어요.
그것이 바로 알고도 짓는 죄이고요.
알면서 의도를 가지고 짓는 죄죠.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고라의 죄는 그가 한 말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어쩌면 옳은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가 옳은 말이라도 그 말을 왜 했는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고라의 의도가 적혀 있습니다.

민수기16: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구별하셔서, 주님께로 가까이 나오게 하셨소. 그리고 주님의 성막 일을 하게 하셨소. 그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회중 앞에 세워, 그들을 돌보게 하셨소. 그런데 이것이 당신들에게 부족하단 말이오?”

고라의 의도는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신 직책보다, 주신 지위보다, 주신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바랬던 것이죠.
그러면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모세를 몰아 붙였습니다.
옳은 말로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실수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용서 받습니다.
우리가 어리석고, 알지 못해서 짓는 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주님께 나오면 용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면서, 의도적으로,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몰아붙이는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고의적인 죄는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용서받지 못해요.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는 아무리 옳은 말로 포장해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고라 사건의 전말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