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8. 20:49ㆍ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민수기 14:20-33 광야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시간입니다.
어제 주일 공동체 식사를 마치고 커피타임을 가지며 집사님들과 담소를 나눴습니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는데요.
한 집사님이 자신의 여행담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직장에서 상사 분들을 모시고 간 배낭여행이었답니다.
가장 어린 직원이었던 집사님은 응당 모든 일정의 도맡아 하는 신세가 되었죠.
그런데 상사 분들이 툭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더래요.
조금만 힘든 걸음을 해야 하는 일정이면 싫다고 하고,
햄버거 같은 음식도 싫다고 하고,
툭하면 라면 끓여내라고 하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답니다.
외국에 나가서, 그것도 배낭여행을 가면서
한국에서와 똑같은 생활을 원한다면 아마 그 여행은 고생일 것입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본래 나의 생활을 버리고 그 곳에 나를 맡기는 것이어야 하는데요.
나의 생활에 여행하는 곳을 맞추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중심, 내 마음대로 여행지의 삶이 쉽게 바뀌어 주지 않는 것은 자명하죠.
그러니까 나만 고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불평과 불만만 쌓이게 되죠.
광야는 나를 버리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시간이죠.
많은 사람들이 광야를 고난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광야가 고난과는 별 상관성이 없어요.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 주시고, 걱정하지 않아도 길을 알려주시는데
무슨 고난입니까?
문제는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고난으로 여긴다는 점이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난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다는 것은 물에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위험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일수록 전문가에게 나를 맡겨야 합니다.
구조하려 달려온 인명구조사 앞에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면 둘 다 위험에 빠지죠.
이 때는 나의 생각을 버리고 그냥 맡겨야 합니다.
이 또한 문제는 이게 죽을 각오를 해야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마치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십자가는 예수님이 인명구조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맡긴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광야에서 살 길은 맡기는 것입니다.
버릴 줄 알아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고요.
맡길 줄 알아야 성장이 있습니다.
광야는 그런 곳이죠.
내가 생각하는 세계만이 옳다고 여기면 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보다 더 크고 높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새로운 세계로 향할 수 있죠.
여행이야기를 해서 말인데요.
제가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외국에 처음 가서 든 생각이 뭔지 아십니까?
“외국이라는 곳이 진짜 있구나?”였어요.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이죠?그런데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국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책으로, TV로, 이미 다 보았고, 알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정말 보니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여기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더라고요.
아무리 알고, 아무리 생각에 있어도 직접 걷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나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오늘 본문은 극명하게 갈리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가나안을 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말이죠.
본문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세밀히 살펴보면 가나안을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은
하나님의 진노보다 우리의 불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행지의 시간에 나를 맡기지 못하는 사람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도 안 되고, 한국 방송도 못보고, 가족들도 못보고...
입에 맞는 음식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불편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집 나오니 고생이다... 한국이 최고야...”
이런 마음에 그 여행지의 아름다움이 보이겠습니까?
여행지의 특별한 삶이 느껴질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못 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이 함께해도 느끼지 못해요.
그저 운이 좋았고, 그저 우연히 잘 된 것일 뿐이죠.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다루시는지 알지 못하면,
그분이 주시는 사랑과 복 또한 누리지 못해요.
그냥 인생이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게 되죠.
그런 이들에게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안 보여요.
그들이 가나안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을 찾기 전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어떤 것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볼 수 있고요.
그분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우리에게 펼쳐지는 은혜를 누릴 수 있어요.
그 시간이 광야의 시간이고, 곧 예배의 시간이죠.
아버지 손에 들린 검정봉투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세요.
그러지 못하면 그 검정봉투는 점점 여러분에게 불평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그런 불평은 언젠가 검정봉투뿐 아니라 그것을 든 손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55: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묵상하는말씀 > 민수기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의적인 죄는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0) | 2018.10.13 |
---|---|
기억하고 기념하십시오 (0) | 2018.10.13 |
첫 발을 잘 디디십시오 (0) | 2018.10.11 |
우리의 모든 예배에 소제와 전제가 있기를 빕니다 (1) | 2018.10.11 |
묵상의 능력을 키우세요 (0) | 2018.10.09 |
이 땅의 모세로 하나님이 세운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0) | 2018.10.08 |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 (0) | 2018.10.08 |
믿음은 나의 계획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0) | 2018.10.04 |
돈안지유돈 불안지유불(豚眼只有豚 佛眼只有佛) (0) | 2018.10.03 |
사람에 대한 판단은 늘 신중하세요 (0) | 2018.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