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능력을 키우세요

2018. 10. 9. 09:33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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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34-45 묵상의 능력을 키우세요.

“요즘 날씨 너무 좋지?”

인터넷 뉴스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남자는 절대 모르는 여자들의 말”

이 글에서 몇 가지 예가 나오더군요.
날씨를 소재로 한 대화는 너무도 평범하죠.
그런데 그것이 연인관계일 때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자 친구가 한 말이라면
그것은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 질문 안에는 날씨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간혹 여자 친구가 이런 말을 던질 때
주의하라고 알려줍니다.

“저 여자 예쁘지 않아?”

제3자의 미모를 놓고 던진 말에 눈치 없는 남자들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객관적인 눈을 동원해서
열심히(?) 대답을 하죠.
그러나 이런 말에는 또 다른 숨은 의미가 있다고 하네요.

여자친구가 몸이 안 좋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집에 보내려고 할 겁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배려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여자친구의 마음에는
남자친구가 달려가 약을 사오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 모든 말들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여자분들의 마음을 곡해한 측면도 있을지 모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말 가운데는 또 다른 뜻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부모님들이 자녀들 훈육을 할 때 간혹 회초리를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초리는 폭력일까요? 사랑일까요?
간혹 거친 언사도 동원됩니다.
“당장 꺼져! 짐 싸들고 이 집에서 나가?”
그 말은 진짜 꺼지라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다른 뜻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저주에 가까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시겠다고도 하십니다.
마치 겁박에 가까운 소리로 들려요.
이때 광야에서의 시간도 정해집니다.
열흘 길의 여정이 한 세대가 가버릴 40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불평했던 이들이
광야에서 죽을 것임을 선포하시죠.

이 말이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하나님이 잔인하게 보이십니까?
아니면 너무도 객관적이고,
너무도 확실하신 하나님을 보시나요?
이 말에 다른 의미를 읽으실 수는 없으신가요?

이런 하나님의 음성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무턱대고 가나안으로 쳐 들어가자고 말하죠.
어제까지 가나안은 무섭다며 이집트로 돌아가자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가나안으로 가자고 할까요?
일순간 용기가 생긴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가 무서웠던 것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행동은 순종이 아닙니다.
지금 광야의 백성들은 자신의 고난을 피하고자 순종하죠.
마치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을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요.
진짜 가나안에만 들어가면 다 끝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안 들어가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행동하지 않아서 망한 것도 아니에요.
진짜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 망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안 드립니까? 교회를 안 나갑니까?
그렇다고 봉사를 안 해요?
할 것 다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불평과 불만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진노가 사랑이 아니라 저주로 읽히고요.
그 선포 이면의 눈물이 보이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백성이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시는
그 마음이 읽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길이 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묵상의 능력을 키우세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여러분이 되세요.
그 말씀에서, 그 선포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보는 능력을 기르세요.
그 상황, 그 현실에서 더 깊고 넓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성숙함을 만드세요.
그 묵상의 능력으로 우리의 행동을 정하세요.
그것이 진정한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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