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4. 09:12ㆍ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민수기 18:1~7 제사장은 이웃을 중보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의 직무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사장은 특별합니다.
성막과 제단을 관리하는 일이 맡겨진 존재들인데요.
그 일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하죠.
일반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제사장이라고 죄가 없는 완전한 존재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직무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유독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5절인데요.
“성소 안에서 하는 일, 제단에서 하는 일은 너희만이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는 진노가 내리지 아니할 것이다.”
개정개역본으로도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제단의 직무를 다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이 제 눈에 들어온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제사장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 직무가 기가 막혀요.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을 놓고
하나님과 이것은 논쟁하던 장면을 떠올립니다.
아브라함은 타락의 도시 소돔의 멸망을 놓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어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십니까?"
그러면서 소돔성에 의인이 50명이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겠느냐고
하나님께 도발하죠.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브라함의 도발에 하나님이 응답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결국 아브라함의 흥정으로 그 숫자는 10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응답은 유지되죠.
여기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두가지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멸망을 막고 있다는 점이 하나입니다.
그의 간구로 멸망의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에요.
또 한가지는 연결된 이야기입니다만
소돔성의 멸망계획이 의인 10명으로 철회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사실 의인 10명이 있다고 그 도시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의인 10명이 있다고 소돔성의 지은 죄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들이 지금 회개한 것도 아닌데요.
결국 그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에 이르지만
분명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10명만 있었어도 멸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죄로부터 해방됩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 특권은 우리가 온전한 존재이기에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니죠.
우리가 받을만한 존재이기에 받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분으로 인해, 그분이 보증해 주셨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 많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 죄가 사라지지 않은 우리는 하나님께 대화조차도 요청할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도 하고,
기도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당당히 말이죠.
그런데 이는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여전히 지금도 그런 자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이름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이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간청을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만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증해 주시기 때문에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풀려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의 제사장이 되어 주시죠.
문제는, 이제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내가 그 제사장의 직무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구원받은 우리가 이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믿지 않는 이웃들의 영적인 보증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중보 해야 하죠.
또한 그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심판자나 재판관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죄를 대신하는 자리이고, 중보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대신 용서를 빌고, 대신 구원을 간구하는 자리죠.
그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사랑이듯 말이죠.
복음전파는 무슨 세력확장이 아닙니다.
마치 선심쓰듯 나눠주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줘도 되고 안줘도 되는, 혹은 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그만인 그런 것도 아니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중보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죄를 대신지고 대신 용서를 구하는 변호인이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우리의 손에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렇게 이웃을 중보하는 자리입니다.
제사장은 이웃의 변호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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