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4. 09:13ㆍ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민수기 18:21-32 매 순간, 주님 앞에 서는 모험을 감행하세요
오늘 본문의 주제는 3가지입니다.
일반인들은 회막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오직 회막의 관리를 맡은 레위인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레위인은 회막을 관리하는 대신
다른 11지파의 십일조로 생활한다는 것이죠.
이는 레위인이 다른 11지파에 비해 다른 유산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위 회막의 관리를 전담하며 다른 지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셈이죠.
참고로 회막은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성막의 명칭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주님께 제사 드리는 장소를 통틀어 성막이라고 합니다.
성막은 둘레를 천으로 울타리를 만들죠.
가로가 45m, 세로가 22.5m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회막이 있습니다.
지붕이 덮힌 모양으로 가로 15m, 세로 5m 남짓의 크기죠.
이것도 둘로 나눠 각각 성소와 지성소로 불리죠.
레위인들은 이 회막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설명해야 할 내용들은 많습니다.
성막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고,
십일조를 통해 각각의 사명에 따라 살아가며 더불어 사는 방법도 알아야 하는데요.
오늘 저의 눈에 특별히 들어온 것은,
회막의 관리를 맡은 레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회막의 일을 맡은 레위인들의 모습이죠.
회막에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은,
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종이나 나무들이 거대한 불 앞에서 타버리듯이 말이죠.
이것은 어떤 징벌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강력한 빛 앞에 우리가 눈을 뜨지 못하는 것처럼
거룩하고 선하신 주님 앞에 죄가 견디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레위지파는 그 회막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특권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렇다고 레위인들이 죄를 가지고 있어도
회막에 마구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또한 거룩을 입지 않고는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죠.
그러니까 그들의 임무는 회막을 관리한다는 것보다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임무였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리스크를 안고 하는 임무인 셈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다른 지파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 1/10을 내어 줍니다.
어찌 보면 위험수당인 셈이죠.
자신들을 대신하여 위험을 무릎 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활이 더 쉬우실 거라 생각되세요?
죽음의 리스크를 안고 수당을 받는 삶과
돈을 지불하더라도 죽음의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는 삶 중에 말이죠.
목숨을 걸고 거룩함을 유지하는 삶과,
적당히 죄를 지어도 1/10만 지불하면 괜찮은 삶 중에 말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릴 적에 시험을 보는 날이면 늘 긴장을 했어요.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마치 딴 생각을 하면 공부한 내용들을 다 까먹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늘 초 집중을 하고,
심지어는 나쁜 생각, 혹은 나쁜 마음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거룩한 마음을 잃으면 모든 준비가 허사가 될 것 같았습니다.
너무 경도된 고지식한 마음이자 신앙이었던 거죠?
그런데 저는 늘 그랬습니다.
시험뿐만 아니라 어떤 어려움에도, 고난에도 비슷했습니다.
그런 이면에는 이 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죠.
왜냐하면 해결되고 나면 이제 해방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무엇에 해방되고 싶었나 싶어요.
공부하는데서요?
아니, 어쩌면 나를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해방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늘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에서 해방되고 싶었는지도 말이죠.
매일 하나님 앞에서 서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요.
한번쯤은 하나님이 안 보셨으면,
한번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대로 살고 싶었을지도요.
우리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 중에 상당부분은 이런 것일지도 몰라요.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되지 않아서,
아무 걱정 없이 내 뜻대로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힘든 것일지도요.
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내 뜻대로 살고 싶고,
남을 시켜서 죽음의 리스크를 지게하고서라도
나는 내 뜻대로 살고 싶은 거 말이죠.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서는 죽음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예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예배를 마치면 이제 나는 해방이 될 거야!'
'예배를 드렸으니 이제 일주일은 내 마음대로다'
이런 마음 말이죠.
만약 우리의 모습이 이렇다면 우리는 헛예배를 드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죽음의 리스크를 안고 처절한 마음으로 거룩함을 붙잡는 모습으로요.
그것이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몰라요.
매일, 어쩌면 매순간,
평생의 일, 평생의 사명이 그 일이었던 레위인처럼
언제나 목숨을 걸고 주님 앞에 서는 모험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p.s.
‘신앙이 밥 먹여주냐?’라는 비아냥의 말들을 간혹 듣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의 레위인에게서는 그 답을 들을 수 있네요.
그들의 거룩함이 밥을 먹여준다고요.
그들의 하나님 앞에 서는 헌신과 노력이 밥값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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