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리에게 가나안은 하나님입니다.

2018. 10. 26. 09:46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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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12-21 진짜 우리에게 가나안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시나이반도 북동편으로 가나안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는 길이 세 가지였습니다.
신광야를 돌아 지중해 연안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 있는데요.
이 길을 팔레스타인 길이라고 합니다.
아니면 에돔땅을 지나 사해의 동편을 돌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어요.
이 길은 소위 왕의 대로라고 불렸는데요.
당시 교역을 위해 주로 쓰였던 길로,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이었기 때문이죠.
모세는 이 길을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길이고 빠른 길이죠.

그러나 문제는 이 길이 에돔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에돔왕에게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도움의 편지를 쓰죠.
아시다시피 에돔왕은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이 거절이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수백만명이 넘었습니다.
장정만도 엄청난, 군사적으로 보면 100만대군이죠.
이런 무리가 나라의 중앙을 지나가겠다고 하면 허락할 왕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모세는 두 번씩이나 부탁을 합니다.
전쟁이나 다툼, 심지어 물이나 식량등의 경제적 손실도 일으키지 않겠다고까지 하죠.
그럼에도 에돔의 거절은 분명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에돔과 전쟁을 해서라도 빠른 길을 선택하거나,
혹은 돌아가거나.
이스라엘은 돌아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들의 선택은 다시 홍해까지 내려와 에돔땅 동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사막길이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있다죠.
“빨리빨리”
우리에게는 ‘빨리’라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습니다.
빨리하는 일, 지름길 등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결처럼 여기죠.
빠른 나이에 박사를 받을 수 있다면 천재로 취급받고요.
일찍 승진을 하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이왕 오르려면 빨리 올라야 하고요.
이왕 가려면 가장 짧은 길, 초고속 승진의 길을 걸어야 하죠.
그래서 늘 ‘빨리’와 ‘지름길’은 최우선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들이 생기죠.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빠른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옳은 길입니다.
옳은 길이란 의도가 좋은 길, 동기가 바른 길을 뜻하죠.

가나안에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왜 가나안에 가는지, 어떻게 가나안에 가는지,
무엇을 위해 가나안에 가는지를 알아야 하죠.
우리는 곧잘 교회 성장을 자랑합니다.
몇 달만에 몇 명의 사람이 모였다는 것이 이슈가 되기도 하죠.
그러나 왜 그렇게 모이게 하셨는지,
그 교회를 통해 무엇을 하시고자 사람을 모이게 하였는지를 모르면,
우리의 성장은 그저 몸집만 큰 아이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신장 190cm의 훤칠한 키에, 체중 100kg의 단단한 몸매라면 누가 봐도 멋집니다.
그러나 그런 신체를 가진 사람의 나이가 다섯 살이라면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근심거리죠.

지름길만이 답은 아닙니다.
빨리 가려고 하지 마세요.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빠른 길보다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이 더 중요하고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길은 과정의 길입니다.
그들의 목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어떻게든 어떤 식이든 가나안에는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광야에서 원하시는 것은 가나안까지 가는 결과가 아니었어요.
그가 관심 있게 바라보신 것은 가나안으로 가는 우리의 과정이었습니다.
신앙은 결과가 아닙니다.
어떤 놀라운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어떤 변화의 과정이 있었는지,
우리 안에 어떤 사귐의 과정이 있었는지가 중요하죠.
그것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생각이시죠.

때론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요.
아니 모세처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모세에게 중요했던 것은 가나안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였으니까요.
진짜 우리에게 가나안은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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