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숙해야 할 때 성숙하지 못하면 퇴보로 이어집니다

2018. 10. 26. 09:45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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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1-11 내가 성숙해야 할 때 성숙하지 못하면 퇴보로 이어집니다.

이제는 조금 지겹습니다.
백성들의 불만은 그칠 줄을 모르네요.
오늘 본문은 바위에서 물이 나는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위 므리바 샘 사건이라고 부르죠.

이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의 평행본문입니다.
평행본문이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출애굽17장과 민수기 20장의 브리바 샘 사건은 동일합니다.
장소도 같고, 불평도 같고, 바위에서 물이 솟는 것도 똑같죠.
그런데 저는 이 두 권의 책이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1절의 미리암의 죽음을 언급한 내용 때문입니다.

출애굽17장의 샘물사건은 비교적 광야 초기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20장에 언급된 샘물사건은
광야생활의 막바지 사건이 됩니다.
물론 미리암이 죽은 시기에 대한 엇갈린 해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리암의 죽음을
출애굽 후 40년쯤 되던 해라고 보기 때문이죠.
게다가 민수기 20장에서 아론의 죽음도 언급하죠.
이를 보면 민수기 샘물사건은
광야에서 40년이 지난 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왜 출애굽기17장과 민수기 20장은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불평도 조금씩 다릅니다.
출애굽17장의 경우, 불평의 근거가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민수기20장의 경우, 불평의 근거는
‘출애굽한지가 언젠데 우리는 아직도 광야냐?’라는 점이죠.

이런 근거로 봐서 저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사건은 동일사건이 아니라
반복의 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지나서 그들은 다시 신 광야에 왔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물이 없는 일이 다시 벌어진 것이죠.

4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알만도 합니다.
여러 차례 사건을 겪으면서 이제 기억할만도 해요.
그런데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습니다.
똑같은 일이 벌어졌는데도, 우리의 반응도 똑같아요.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적어도 예전의 일을 기억해 낼 줄은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광야의 백성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성숙해지지 못하면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성숙해야 할 때 성숙하지 못하면 퇴보로 이어집니다.
시간이 흐르고, 자라나야 할 때 자라나지 못하면,
그것이 가장 큰 퇴보로 이어진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민수기의 샘물사건은 출애굽기의 샘물사건과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출애굽의 사건 때보다
퇴보한 모습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이면 실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실력입니다.
똑같은 실수, 똑같은 잘못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나의 실력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 여러분이 그동안 기도하신 내용들을 떠올려 보세요.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도하던 배필을 주셨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 배필이 불평거리죠?
기도하고 바라던 자녀도 주셨는데, 자녀 때문에 힘들죠?
직장도, 길도, 사업도 주어졌지만
내가 생각하는 만큼이 아니어서 오히려 마음에 안 드시죠?
그리고 나의 자리에서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믿음이 없으면 있는 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면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도 감동이 없고요.
쉽게 잊어버리죠.
주신 것을 먼저 감사해야 받을 것들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인정해야 하나님의 선물도 보이고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해야 나에게 주시는 은혜도 보입니다.

광야에서는 성장하셔야 합니다.
나에게 성숙해야할 시간이 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은혜를 목도해야 할 때가 있어요.
나의 욕망을 억누르고, 주님이 하시는 일에 맡겨야 할 때,
나의 시간을 뒤로하고 주님의 시간에 맡겨야 할 때,
나의 마음을 십자가 그늘에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에 맡겨야 할 때,
그때가 성장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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