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후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2018. 11. 6. 11:08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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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1:1-9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한때 유행했던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 가사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뜬금없는 가요 가사에 당황하셨나요?
그래도 이 가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으니 조금 더 적어보겠습니다.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침묵만이 흐르고 있죠.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오늘 본문은 2가지 사건이 겹칩니다.
1~4절은 네겝지방의 아랏왕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장면이 나오고요.
5~9절은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제는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금세 까먹는 그들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질 정도죠.

그런데 지금까지는 저는 그저 단순하게
이 장면을 은혜를 모르는 백성들의 모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빌린 돈은 기억 못해도 빌려준 돈은 기억한다'고요.
받은 것은 기억 못하고, 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죠.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다른 측면이 보였습니다.
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을 하고 있는지,
언제 불평을 늘어놓는지가 보였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인간의 패턴이 비슷합니다.
홍해를 기적처럼 건넌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기 시작하죠.(출15)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기적이 있은 직후,
이번엔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합니다.(출16)
오늘 본문도 전쟁의 승리 후 백성들의 불평이 일어납니다.
패턴이 은혜 후 불평이에요.
기적과 인도하심 이후 원망과 불만이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기억력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려서가 아니에요.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민21:4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은 손쉬운 지름길을
에돔왕으로 인해 거절당한 상태입니다.
에돔 땅을 통과하여 왕의 길로 걷는 방법이 좌절된 것이죠.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에돔 동편
힘든 사막의 길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길을 걷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조급해졌을까요?
시간이 없어서요?
천만에요.
지금껏 40년을 방황했는데요?
조급해진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조금 전에 승리를 맛보았거든요.
조금 전에 이겼거든요.
전쟁에서 승리하고 보니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에돔땅도 쳐서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렇다면 이렇게 개고생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죠.
이 상황이 되니까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은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더 나은 상황을 꿈꾸죠.
그래서 이전의 불편한 상황들을 다시는 안하고 싶어 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인데 다시 하라면 못하죠.
왜 그런지 아세요?
성공 지향적으로, 편하고 더 나은 상황을 꿈꾸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죠.
마지못해 지내온 그런 시간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더 나은 상황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더 나은 상황은 영성이기 때문이죠.
영성이 상황을 바꾸는 것이지 상황이 영성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깊은 영성이 나의 생활을 바꿀 수는 있어도,
편하고 좋은 생활이 나의 영성은 못 바꾸기 때문이에요.

광야의 길은 더 나은 생활을 향한 과정이 아닙니다.
광야의 길은 더 깊은 영성을 만드는 과정이죠.
광야의 길은 더 살기 편한 가나안으로의 이주가 아니고요.
광야의 길은 어디를 가도, 어떤 환경이 되어도,
좋아도 나빠도, 기뻐도 슬퍼도, 편해도 불편해도,
주님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영성으로의 이주과정입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조심하세요.
그 연극은 내가 박수를 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연극이 아니니까요.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것이죠.
메시지를 전했다면 관객이 떠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를 가지고 삶의 자리에서 살게 될테니까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이유는 외부와 싸우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라는 뜻이죠.
내게 승리가 주어졌다고 내가 힘이 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믿으라는 말이죠.
이것을 착각하면 조바심이 생깁니다.
내가 하려고 하죠.
그래서 불평이 생기는 겁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은 후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나는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은혜로 주신 것이거든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그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교만이 조급을 부르고, 그 조급이 불평을 부르죠.
그리고 그 불평은 결국 하나님을 향합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겸손하게 주님 앞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 사랑, 인도하심을,
자격이 없는 나를 향한 은혜로 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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