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6. 11:15ㆍ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민수기 22:14-27 애꿎은 나귀를 때리지 마세요. 이중적인 나의 마음을 때리세요.
발락이 발람에게 간청하는 일은 총 3회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참세번이라고 하나요?
그런데 이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했던 사탄의 유혹을 닮았습니다.
사탄도 예수님을 3번 유혹하죠.
오늘 본문은 조금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약간의 심리적인 전개와 숨겨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죠.
본래 본심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발락의 요청을 발람은 거절합니다.
그런데 거절하는 방법이 재미있다고 말씀드렸죠?
분명히 거절이긴 한데 발락이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빌미를 줍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로 발락의 신하들이 발람을 찾아오죠.
이번에는 더 지위가 높은 신하들이 더 많은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이 장면이 재미있어요.
어찌되었든 발락은 발람의 거절을 ‘돈이 적어서 그렇구나!’ 생각한 것 같습니다.
왜 영화 같은데서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누군가 돈 봉투를 꺼내면서 무슨 부탁을 하는데요.
슬쩍 돈 봉투를 열어보고는 이렇게 말하죠.
“돈이 중요한 게 아녀... 어디 그게 쉬운 일이어? 난 도와줄 능력이 안된당께?”
이 말에 상대방은 돈을 더 내놓죠.
지금 발락과 발람의 심리 싸움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것이 발락의 오판인지, 발람의 기술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입장은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오늘도 한번 보세요.
두 번째 찾아온 발락의 신하들에게 발람은 이렇게 말하죠.
"발락이 비록 그의 궁궐에 가득한 금과 은을 나에게 준다 해도, 주 나의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서는, 크든 작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대들은 오늘 밤은 이 곳에서 묵으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더 말씀하실지 알아보겠습니다."
분명히 거절 같은데, 그들을 집에 들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주님께서 더 하실 말씀이 있는지 알아보겠다잖습니까?
아니 알아볼 것이 뭐가 있습니까?
주님이 하지 말라고 벌써 말씀하셨잖아요?
이것은 분명 거절이 아니라 협상입니다.
더 재미있는 광경은 그 다음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협상을 하는 발람에게 하나님도 심리적인 협상으로 응하십니다.
그에게 그들을 따라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 말을 들은 발람은 아침에 냉큼 그들을 따라 나섭니다.
이를 보고 하나님이 크게 노하시죠.
이 장면을 그냥 읽으면
하나님이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발람의 본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이런 기도가 있어요.
분명히 아닌 줄 아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 기도도 있어요.
그런데 그 기도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이고 끈기인줄 알죠.
그러나 그런 기도 가운데는 이미
하나님의 응답이나 반응하고는 상관없는 기도가 많습니다.
오직 자신의 숨은 뜻을 관철하려고 드리는 기도일 뿐이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뜻에 동의하는 하나님일 뿐입니다.
다른 대답은 그들에게 필요없죠.
오직 자신만의 대답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하나님은 그들에게 도구일 뿐이죠.
발람의 이런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무슨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처럼 보이죠.
발락의 신하들을 따라 나서는 발람 앞에 주님의 천사들이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들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귀들이 그 천사들의 길막음을 보고 길을 나서지 못하죠.
발람은 애꿎은 나귀들만 때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 나설 때, 우리는 모든 경험과 지식,
직관력과 가치관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죠?
바로 광야와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분 앞에 서야 한다고요.
그것이 예배이고 그것이 기도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바로 발람같이 됩니다.
자신의 뜻과 자신의 생각으로만 가려고 하는 발람은
주님 말씀의 의도를 깨닫지 못해요.
이미 수많은 재물과 명예에 마음이 가 있는 발람은
주님의 천사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애꿎은 나귀만 때리듯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고, 다른 사람들만 탓하죠.
그렇게 내 안에 숨겨진 탐욕은 눈을 멀게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감추인 욕심은 나를 이중적으로 만들죠.
애꿎은 나귀를 때리지 마세요.
이중적인 나의 마음을 때리세요.
쉽게 탐욕에 물드는, 쉽게 욕심에 물들고,
또 그 탐욕과 욕심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나의 본심을 찢으세요.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말고,
옷을 찢지 말고, 어그러진 내 마음을 찢으세요.
상한 심령으로 주 앞에 설 때
우리의 마음에 온전한 위로와 주님 손길이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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