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6. 11:16ㆍ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민수기 22:36-23:10 예배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려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발락과 발람이 대면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짧은 본문이지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묵상이 되는 내용들도 많죠.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발락의 초대에 응합니다.
입으로는 발락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발락을 만나러 가죠.
이를 저는 거래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옳은 것보다는 이익에 마음이 붙들린 모습이라고요.
발람을 만난 발락은 극진한 환대를 합니다.
이미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발람의 욕망을 더욱 부추기는 환대죠.
그리고 드디어 제단을 쌓습니다.
여기서 발락과 발람의 서로 다른 듯 같은 예배가 시작됩니다.
먼저 발람의 예배를 생각해 보시죠.
그는 일곱 개의 제단을 쌓은 후, 이렇게 말하죠.
"어쩌면 주님께서 저를 만나러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밝히 나타내 주시는 것이면, 어떤 말씀이든지 제가 임금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주님은 발람에게 이미 말씀하셨고, 발람도 그것을 압니다.
발락이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였고요.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발람은 지금 또다시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말하고 가는 거죠.
이 태도가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발락과의 거래에 예배를 사용하는 거죠.
아마도 발락은 발람의 이런 태도에서
자신의 바람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발람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쌓고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발람뿐이 아닙니다.
발락도 마찬가지죠.
그 또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예배를 합니다.
이는 마치 사마리아 마을을 지나려다 거절당했던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께 권능으로 불을 내려 저들을 다 태워 죽이라고 요구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님의 권능을 사용하고자 하는 모습이죠.
예배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기위해 하는 것이죠.
우리가 드리는 제사, 우리가 받치는 제물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뇌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일뿐이어야 하죠.
아무리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배해도 결국 하나님의 음성은 동일합니다.
결국 예배는 주님의 마음이 내게 임하는 것,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뜻이 내 마음에 심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내 목적을 위해 주님을 바꾸려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라고요.
오직 믿음은 주님을 위해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주님의 마음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여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예배의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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