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은 아닙니다

2018. 10. 27. 07:07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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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22-29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 아론의 죽음을 알립니다.
그는 끝내 가나안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성경은 아론이 가나안을 보지 못한 이유로 므리바 샘물사건을 거론합니다.
성경은 콕 집어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므리바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죠.
백성들이 물이 없어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은 다 아는 바입니다.
며칠 전 이 므리바 사건을 묵상하면서 이 사건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광야 초창기에 므리바의 샘물 사건이 있었고(출애굽기17장),
이제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한 번 므리바에서 샘물사건이 있었습니다(민수기20장).
저는 이 사건이 동일한 사건이라고 보지 않고, 반복된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로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의 시기를 들었는데요.
그리고 백성들의 불평도 종류가 다름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또 한 가지가 있다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므리바 사건에서는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바위를 치도록 명령하시죠.
그러나 민수기 20장에서는 말로 명령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수십 년 전에 했던 방식으로 지팡이로 바위를 칩니다.
아마도 이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거역했다고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징벌적 본문으로 읽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잘못을 저질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 본문을 읽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일단 저는 2가지 전제적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과연 단지 말로 해야 할 것을 지팡이로 쳤다고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셨을까요?
그리고 둘째는, 과연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징벌일까요?

민수기 20장을 통해 반복된 므리바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화하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전에 기적을 맛보았던 일이 다시 일어나도,
우리에게는 늘 불평은 기억하고 기적은 까먹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어쩌면 모세와 아론이 그것이 화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모세와 아론은 수십 년 전의 생각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수십 년 전의 모습으로 짜증을 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론의 죄를 묻는 장면이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장은 본래 그런 자리입니다.
죄를 다루는 자리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만약 시쳇말로 백성들의 죄가 없다면 필요 없는 자리가 제사장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고, 우리가 완전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가 죄에 얽매여 있기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죠.
그분은 우리의 죄를 향해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도말하는 일이 그분의 일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오히려 아론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론에게는 백성들의 죄를 불평할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그 죄를 감싸고, 변호하고, 깨끗하게 할 의무만 있었던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으로, 제사장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죄를 바라보며 불평하고 짜증낼 권리가 없어요.
오직 이 땅의 죄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구명할 의무만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 죄를 위해 부름 받은 존재들이니까요.

아론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오히려 아론의 성공적인 인생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는 장면이죠.
그는 제사장의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주고 떠납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남을 위해 죄를 대신할 의무를 물려준 것이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가나안을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닙니다.
진짜 성공은 주님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죠.
모세나 아론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거기까지가 그들의 사명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한 것이죠.
그들은 각기 엘르아살에게,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의 사명을 잘 이어주었습니다.

사명을 물려주는 것이 성공입니다.
아버지가 존경스럽지 않으면 아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수 없어요.
전임자의 생각이 옳지 않으면 후임자가 계승하지 않습니다.
나의 유업을, 나의 생각을 물려 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영광입니다.
누군가 나를 이어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명을 잘 붙잡고 왔다는 반증이니까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다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 사명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이 거룩이고요.
누군가 이어 전수된다면 그것이 영광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교회가 이어졌죠.
교회는 전통이 아니라 사명의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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