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2018. 10. 24. 09:14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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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9:11-22 죄는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말씀과 기본적으로 연결됩니다.
정결한 물을 만들어 쓰이는 사용법에 대한 말씀이죠.
특별히 주검을 만진 사람들에 대한 정결의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이 말씀으로 인해
주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시신을 보거나 만지는 것이 재수 없다고 느끼는 감정처럼 말이죠.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이 시신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생명 존중에 관한 입장에서 이 말씀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시신이 부정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존중되지 않는 인식이 부정한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으로 읽습니다.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진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이 비유로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콕 집어서 제사장을 등장시키셨습니다.
제사장은 강도에게 상해를 당해 시신처럼 쓰러져 있는 자를 모른 척 지나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말 인정머리 없어 보이죠.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정결해야 하는 제사장은 시신을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예수님께서 선한 이웃에 관해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제사장은 선한 이웃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단지 율법을 지킨 것일 뿐인데 말이죠.
이 말씀에 비춰볼 때,
오늘의 본문은 시신을 부정한 것으로 보았다기 보다
생명을 잃는 상황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부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 되면 미리 만들어 놓은 정결수로 씻어야 합니다.
이미 어제 우리는 죄에 대해 매일 씻어야 한다는 것을 묵상했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쌓여가는 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정한 사람이 정결의 물로 씻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성막을 더럽힌다는 말씀도 하죠.
이는 단순히 그 한 사람의 더러움 때문은 아닌 듯합니다.
깨끗함에 더러움이 있다면 더욱 티가 나죠.
그리고 그 더러움은 아마도 깨끗함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듯이 선함이 악함을 드러내죠.
그렇게 진리가 거짓을 변화시키는 것이 영적인 변화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더러운 자를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렇게 강조하신 이유 말이죠.
그것은 아마도 죄의 전염성에 대한 경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죄의 전염성은 강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선한 말보다 나쁜 말을 더 빨리 배우죠.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더 관심이 가죠.
꼭 하지 말라고 하는 일에 더 하고 마는 우리들입니다.
그 이유는 악한 것에 강한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보다 거짓이 훨씬 더 강한 전염성이 있죠.
칭찬보다 비난이 훨씬 더 전염성이 강하고요.

죄는 바이러스입니다.
독감과 같은 바이러스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전염되죠.
우리가 매일 정결해야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죄가 남에게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결이 이웃사랑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정결해야 남에게 선함을 전파하기 때문이죠.
내가 정결치 못하면 내가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 안의 죄가 전염됩니다.

일단 내가 정결하고 그 다음 상황을 탓하십시다.
일단 내가 정결하고 상대방을 논하는 것이 맞아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상대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의 죄일 수도 있어요.
내가 전염시킨 그 죄 말입니다.
오늘도 먼저 정결하고 봅시다.
나 먼저 정결하고, 나 먼저 씻고, 나 먼저 죄와 멀어진 후
주어진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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