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가족과의 화평을 이루세요

베드로전서 3:7-12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가족과의 화평을 이루세요.

오늘은 7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베드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경고하죠.
여성들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존재임을 말합니다.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기도가 막힌다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아내와의 관계성이 기도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이죠.
일단 이 말은 시대적인 배경이 필요합니다.
영지주의라고 들어보셨죠?
영지주의란 한마디로 이단인데요.
이단은 초대교회부터 있었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란 ‘앎’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요.
쉽게 말하면 영과 육의 분리를 강조하며 구원은 신비한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적인 어떤 행동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통찰력을 통해 진리가 추구된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이들은 영적인 것을 강조하는 반면 육체는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부정했죠.
다만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눈에 보인 것은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 육체를 입은 것처럼 우리의 눈에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고요.
이것을 가현설(Docetism)이라고 하죠.

이렇게 들으면 정말 엉뚱한 이단처럼 들리지만 영지주의는 우리 기독교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영향을 주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은데 영향이 너무 긍정적인 표현이라 상처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떤 상처냐면 영적인 추구가 이 땅에서의 기독교적 사역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상처입니다.
아직도 영지주의의 영향은 오늘날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삶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영적인 측면을 훨씬 더 강조하는 면이 있습니다.
더불어함께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보다 혼자만의 영적 각성을 더 강조하는 측면이 있죠.
이것이 영지주의의 영향입니다.

영지주의는 초대교회 당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베드로의 편지를 읽는 이들에게도 영지주의의 영향이 있었죠.
그런 이들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차별하고 여성을 업신여기며, 가장 가까운 아내마저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기도가 막히는 이유인 것이죠.

사회적 배경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상관없이 이 말씀이 액면 그대로도 이해가 되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은 가족일테지요.
가족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가족과의 화평이 없고, 사랑이 형성되지 않으면 깨지는 것은 우리 영성이죠.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기도를 막히게 하는 가장 위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기도를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세요.
우리의 영성을 위해서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묶어주신 가족과의 화평을 이루세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세요.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