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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신앙의 길은 본래 억울한 길입니다.

베드로전서 2:18-25 신앙의 길은 본래 억울한 길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보셨습니까?
억울함이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오해받고 누명을 쓰는 일입니다.
억울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남다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커다란 후유증을 동반하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홧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정신과협회에서는 1996년부터 홧병을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했습니다.
병의학 사전에는 우리말 발음인 홧병으로 기록해 놓은 이 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병의 발병원인이 바로 억울함에 있다고 분석하죠.
보통 알려진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이 있는데요.
인내와 절제, 양보를 미덕으로 삼아 심리적인 갈등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문화적 배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혹자는 홧병을 단순한 심리적 작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홧병은 분노 등의 심리적 감정을 넘어 두통과 가슴통증 및 무기력증 등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통증까지 유발합니다.

저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할 때마다 가슴 저린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십자가상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손발에 대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는 고통은 차마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진한 고통을 자주 느낍니다.
‘제자들의 배신을 어떻게 참으셨을까?’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가 오히려 인간에게 죽임 당하는 그 억울함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십자가는 본래 억울함입니다.
선을 행하다 오해받는 자리이고,
남을 위해 싸우다 내가 죽는 자리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억울함이죠.
우리는 억울함을 풀려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억울함을 몸소 안으려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롤러코스터를 타 보셨나요?
여러분은 재미있으신가요?
저는 못 탑니다.
그게 사람을 고문하는 도구지 어찌 놀이기구입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즐거워하죠?
아마 이렇게 말하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짜릿한 맛에, 그런 공포감에 타는 거지 뭐!”
알고 타니까 즐거운 겁니다.
모르고 타면 죽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선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거짓말이 일상인 곳에서 참말을 하고 살면 얼마나 오해를 받겠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이 진리인 이 땅에서 하늘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곤욕이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고 주님을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고 주님의 자녀가 되셨나요?
내가 예수를 믿으면 다 인정해 주고 박수를 칠 줄 아셨나요?
내가 예수를 믿으면 모든 영적 공격이 멈출 줄 아셨나요?
내가 예수를 믿으면 세상이 변할 줄 아셨습니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다만 내가 변했을 뿐입니다.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아도 그러려니 합니다.
주님을 따르다 방해를 받아도 그러려니 하죠.
왜냐하면 본래 그런 줄 알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억울함 덩어리에요.
그 십자가를 진 우리도 억울함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풀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더 억울해집니다.
억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 억울함에는 죽는 것 뿐입니다.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사는 것뿐이죠.
억울함을 묵상하면 억울함만 살아납니다.
내가 행한 선만 묵상하세요.
내가 따르는 주님만 묵상하고요.
내가 가야할 길만 묵상하세요.
그것이 의에는 사는 길이니까요.

오늘도 세상의 가치관에는 죽고, 의의 가치관에는 살아 숨 쉬는 여러분이 되시기 빕니다.
고통과 고난과 억울함에서는 죽고,
긍휼과 사랑과 평화에는 살아서
가는 곳마다, 만나는 이들마다 주님의 향기를 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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