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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우리가 할 일은 순종뿐입니다

베드로전서 1:22-25 우리가 할 일은 순종뿐입니다.

한번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다가 그만
냄비를 태우고 말았습니다.
이 덕분에 냄비가 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어요.
그 냄비를 원상복구하기위해 저는
세제와 수세미를 동원해서 아주 박박 닦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제를 가지고 닦아도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멀쩡한 냄비 하나 버리게 생겼구나 할 때,
집사람이 보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제가 힘을 들여 닦아도 안 되는데
집사람이라고 용빼는 재주 있겠어요?
그런데 집사람은 세제가 아니라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가져오더라고요.
그리고는 적당량을 넣고 끓입니다.
아니, 그랬더니 그렇게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냄비가
감쪽같이 새것이 되어 버리지 뭡니까?

다들 아시는 방법이셨죠?
그런데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식하면 팔다리가 고생한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다 저마다의 방법들이 있습니다.
잘 되지 않는 것은 많은 경우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죠.
어제 묵상에서 속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외형보다는 내면의 문제에 집중하자고 말이죠.
그런데 내면의 문제에 집중하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고자 하면 거룩해집니까?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자 하면 품어지나요?
저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내가 마음을 먹으면 끝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먹어도 안 되고,
먹은 마음은 시간이 가면서 퇴색되더라고요.

믿음도 내 마음대로 강해지지 않더라고요.
신앙이 정신 차린다고 자라나지 않고요.
애를 쓰고, 힘을 다해도 내 안에 거룩은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것, 다 알지만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게 되지 않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힌트를 줍니다.
22절,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나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죠.
정신승리로 내 영혼이 정결케 되지 않습니다.
나의 내면, 나의 영혼을 정결케 하는 방법은,
오직 진리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주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것뿐이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그분의 계획과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 내 영혼을 정결케 합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길은 분명히 아픔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주님의 계획에 있다면
그 아픔은 도리어 우리에게 훈련이 되듯이 말이죠.
나의 뜻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분명히 고통입니다.
그러나 내가 권리를 포기함으로 주님이 일하신다면
그 고통은 오히려 우리에게 권세로 다가오듯이 말입니다.

결국엔 순종이 나를 거룩하게 하고,
결국엔 순종이 나로 사랑하게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뿐입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말씀은
구약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이사야40:6~8,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정말 거룩해지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정말 사랑하고 싶은데 잘 안 되죠.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나라와 의를 위해 쓰임 받고 싶은데
그게 내 의지대로 잘 안 되요.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보세요.
진리에 순종하세요.
말씀에 순종하고, 주신 메시지에 순종해 보세요.
묵상을 통해 주신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모든 것은 주님이 이루십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순종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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