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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6-9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이름에서처럼 베드로입니다.
이 또한 바울서신처럼 편지인데요.
이 편지의 수신자는 1절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그리고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5곳은 당시 소아시아지역으로
현재는 터어키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편지가 보내진 시기와
편지의 수신자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전서가 쓰인 시기는 대략 AD60년대 중반쯤으로 보입니다.
그쯤이면 베드로가 죽기 직전일 가능성이 많죠.
아시는 바와 같이 베드로는 순교하였습니다.
순교했다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다는 말이죠.
이 편지를 보낼 당시 소아시아지역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습니다.
유명한 로마황제 네로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죠.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시련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입니다.
신약성경에 여러 번 사용된 단어죠.
보통 ‘시험’, ‘시련’, 혹은 ‘유혹’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절로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구절에서
“시험”이라는 단어가 바로 [페이라스모스]입니다.
사실 이 단어는 복잡한 뜻을 가지고 있어요.
시험, 혹은 유혹의 주체에 따라서
의미가 완전히 변할 수도 있는 단어입니다.
가령,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람이 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험은 위험하죠.
가능하면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를 단련하려고 주는 시험도 있어요.
운동선수들에게 독하게 훈련하는 지도자들이 있죠.
정말 힘들고, 혹독한 훈련이지만
그 시험은 가능하면 붙잡아야 하고 견뎌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성장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단어의 의미나 해석보다
더 중요한 한 구절이 묵상되네요.
바로 “잠시동안”이라는 단어입니다.

시련은 작아도 아프고 커도 아픕니다.
시험은 어쨌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사안에 따라, 상황에 따라 힘겹고 어렵습니다.
제3자가 쉽게 말할 상황이 못 되죠.
시험을 당하는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압니다.
그러니 그 시험을 가지고 참으라느니, 견디라느니 하는 말은
오히려 더 상심을 가져다주는 말이 될지도 몰라요.

그러나 딱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어떤 시험이든 그 시험은 끝이 있다는 사실이죠.
주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은
어떤 시련도, 어떤 시험도 종국에는 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시련은 분명히 끝날 것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이 더욱 강한 것은
그 시련의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언제 끝날지, 언제 나아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군대의 지휘관은 지치지 않는다고 하죠.
훈련생들과 함께 구보를 해도
지휘관은 지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경험이 있고, 더 나은 체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지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훈련의 끝이 언제인지 알기 때문이죠.
지휘관은 언제든지 자신이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훈련병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은
이 훈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출산의 고통은 상상을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저 같은 남자는 죽어도 알 수 없는 고통이죠.
그런데 엄마들은 견딥니다.
물론 이 또한 여자분들이 남자들보다
더 잘 견디는 정신력을 가졌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보다 이 인내심의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아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의, 이 고통의 끝을 알기 때문이죠.
아이를 낳으면 끝나는 고통임을 아는 겁니다.
그래서 담대해지고, 그래서 견디는 것이죠.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어떠한 고난이나 아픔이어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깊은 과거여도 반드시 잊혀지고요.
비록 그것이 영원할 것 같아도 반드시 지나갑니다.
비록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반드시 천국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도, 어떤 시련도 끝이 있음을 아세요.
그 끝에 주님이 계심을 아세요.
반드시 마지막은 주님의 품임을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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