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고난을 묵상하지 마세요

베드로전서 4:12-19 고난을 묵상하지 마세요.

어제 일본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친구 목사 부부와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젊은 시절 함께 찬양사역을 했던 친구들이죠.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 그동안 알고 지내던 분들을 많이 만났던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것이,
한국에 함께 있는 친구들은 1년이 지나도 잘 안 만나게 됩니다.
꼭 외국에서 친구가 들어와야 함께 만나죠.
그러다보니 외국에 있는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들어오면 만나니까요.
그러나 한국에 함께 있는 친구들은 한국에 같이 있어도 만나기가 쉽지 않죠.

이 친구부부는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서 친구들을 많이 만났더라고요.
저는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이 친구들이 다 만났더군요.
그러다보니 정작 그 친구들의 소식을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서 듣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많은 소식들 중에는 기쁜 소식도, 가슴 아픈 소식도 있었는데요.
마음 아픈 소식들이 더 크게 들리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겠죠?
그 소식 중에 어제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친구 목사의 이야기인데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 건물도 번듯하게 건축하고 사역도 잘하는 친구목사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교회를 이 일본선교사 부부들은 한국에 나올 때마다 갔었던 모양입니다.
이번에도 방문을 했는데 교회가 썰렁하더래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갈 때마다 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목사님의 오른팔(?)처럼 일하던 분이 안 보이시더란 거죠.
신앙생활도 늘 열심이셨고, 선교에도 뜻이 있어서 열정적으로 많이 하시던 분이었데요.
특별히 교회의 기둥처럼 목사님을 도와왔던 분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 분이 안 보이시더래요.
그래서 친구목사에게 물으니 아픈 사연이 있더랍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그분에게는 어머니가 계셨는데요.
어머니께서 갑자기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 충격으로 이 가정이 힘들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오지 않았데요.
이유는 어떻게 이렇게 신앙생활 하고, 교회에 헌신하며 살았는데 자신에게 이런 불행과 아픔이 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데요.

상황이 이해도 되고, 충격과 아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과연 그분이 했던 것은 신앙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싶었어요.

주위에서 많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는데 왜 나에게 고난이 오는가?’
‘예수 믿으며 사는데 왜 여전히 고난은 나를 떠나지 않는가?’

고난이 무엇이라고 쉽게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고난이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도 쉽게 말하기 힘들어요.
모든 고난이 무슨 사탄의 공격이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고, 고난이 하나님의 시험이라고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신앙생활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으로 신앙생활에 흔들림이 있기도, 혹은 굳건함이 만들어지기도 하니까요.

이미 어제, 고난의 온전한 길에 대해서는 묵상했습니다.
나의 죄로 인해 오는 것은 회개할 일이지 고난은 아니라고요.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 즉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받는 어려움이 고난이라는 것은 이미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어릴 적에 쿵푸영화가 유행했었습니다.
이소룡이라는 배우를 비롯하여 성룡에 이르기까지 중국무술영화가 성행했죠.
그중에 소림사와 관련된 영화들로 ‘무슨 무슨 관문’ 이런 제목의 영화들이 많았는데요.
그 영화 내용은 주로 훈련을 받는 무술가들의 이야기였어요.
내용은 무슨 과정을 통과하면 소림사의 제자로 인정받는 뭐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는데요.
그 과정이 되게 혹독해서 통과하는 사람이 적었어요.
실패하고, 떨어져도 끝까지 그 관문을 통과하는 제자들의 이야기에 짜릿한 성취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요?
왜 힘들게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거죠?
이유는 간단하죠.
제자의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아마도 그 무수한 힘든 과정, 때로는 목숨을 건 과정을 묵상한다면 기쁨은 없습니다.
영화에서도 통과과정의 무서움과 소문을 듣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도 나와요.
고난을 묵상하지 마세요.
고난을 통해 성장할 나의 미래를 묵상하세요.
고난이라고 여기는 순간, 고난은 그 물리적 힘 이상으로 우리에게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고난이 아니라 성장의 길이에요.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고요.

우리에게 고난은 없어요.
성장의 길만 있을 뿐입니다.
하루하루 삶이 생각해보면 고되고 힘든 삶이에요.
숨쉬기도 힘들어요.
움직이기도 힘들고, 모든 것이 우리의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서 해야할 일들이에요.
그것을 생각하면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인생이 피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삶이에요.

여러분의 인생은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이 묵상되는 삶이길 빕니다.
어렵고 힘들고 낙망되는 고난이 묵상되지 않고요.
99%의 아픔 가운데 1%의 기쁨이 있더라도 그 1%의 기쁨을 묵상하는 자는 그 삶이 천국입니다.
99%의 행복 가운데서도 1%의 아픔만을 묵상하는 인생은 지옥이고요.
우리가 걷는 인생은 고난이 아니라 연습입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은 힘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키우는 중인 것이고요.
우리가 걷는 인생은 지금 결산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결산하는 것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