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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믿음이 성장하는 토대는 우리의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베드로전서 5:1-6 믿음이 성장하는 토대는 우리의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한마디로 눈이 돌아가버린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도, 생각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밧세바를 취하기 위한 생각만 가득했겠죠.
온갖 불법과 사악한 마음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어느 정도 먹혀 한 숨을 돌리는 순간,
선지자 나단이 그의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나단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죠.

저는 우리가 죄를 짓는 그 순간보다, 우리의 죄를 마무리하는 그 순간이 우리에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죄를 짓는 것을 용인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으시죠.
막14:38,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우리는 결코 죄에서 멀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리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죠.
그리고 우리에게 회복의 프로그램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회개와 용서’입니다.

다윗은 나단을 통해 돌아갔던 눈이 되돌아 왔습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자신의 유익만을 쫓던 자신을 떠나 하나님의 편으로 돌아오죠.
우리가 자기의 유익, 자기의 만족을 위해 눈이 멀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두 주인, 즉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제물에 눈이 멀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는 다윗은 곧바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합니다.

시편51편은 나단을 만난 후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신 구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주십시오.”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아주 절절한 회개의 기도문들입니다.
그런데 그 구절 사이에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12절인데요.
시51: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다윗은 자신을 지탱하는 도구로 자발적인 마음을 구합니다.
여기서 자신을 지탱한다는 의미는 뭘까요?
아마도 자신의 회개와 회복, 그리고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늘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분의 마음과 생각을 늘 간직하고 싶죠.
그런데 다윗에 의하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나의 자발적인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금 묵상하는 여러분의 모습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아세요?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 말입니다.
화려한 찬양과 훌륭한 시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일까요?
뛰어난 해석력과 통찰력, 그리고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하는 지속력일까요?
물론 우리의 준비와 열정은 한이 없습니다.
많을수록, 훌륭할수록, 꾸준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만큼 기뻐하시고, 감동케하는 우리의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발적인 마음, 자원하는 심령”이에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양을 먹이라고 말합니다.
장로들은 영적인 리더들을 말하죠.
그러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로 먼저 예수를 믿은 우리들입니다.
양들을 먹인다는 것은 사역을 말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역을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즐거움으로, 혹은 웃으며 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이 말씀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믿음 생활에는 자원하는 심령이 있습니까?
우리는 생각보다 자발적인 마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우리들은 자발적인 마음보다는 습관이 더 많고요.
기도하는 우리들은 자원하는 심령보다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더 많아요.

결혼은 누군가의 소개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실은 사랑으로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시작은 권면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와 아픔으로, 혹은 마음의 부담감으로 시작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발적인 마음에서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기도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의 책임감은 자발적인 마음으로 표현되기를 빕니다.
사랑이 자라는 토양은 자발적인 마음이에요.
믿음이 성장하는 토대는 우리의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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