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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욥기묵상

신앙은 늘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계신지를 찾는 것입니다

2014.5.1. 욥기묵상(욥1:1~5)
신앙은 늘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계신지를 찾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참극이 이어지는 시간들입니다.
마치 대한민국의 민낯이 낱낱히 까발려지는듯한
부끄럽고 처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진리인듯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소리는
끝내 아이들의 죽음을 몰고오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권력은
몇몇 특권층을 지키는 권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생명의 존엄함을 위해 쓰여야할 돈은
어느새 생명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드는
괴물로 변해 버렸습니다.

겉은 멀쩡한듯 하나
사람이 어떤 중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행동과 생각이 결정되는 것임을
몸으로 채득하는데
단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눈 뜬 장님이 따로 없고,
귀 뚫린 귀머거리가 따로 없습니다.
중심을 보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겉모양에 도취된 모든 자들이,
바로 참소경이고, 참귀머거리라는 사실.
바로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대가는 지독했습니다.

바울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많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이적의 이면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이적의 중심이 아니셨던 것이죠.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것은
마술입니다.
쇼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죠.
그러나 예수님의 이적을 이끌어낸 힘은
"공감"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아프고 어렵고 눈물짓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시고는 같은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아프고 애닮고 시린 마음을 같이 하셨습니다.
그 공감의 힘이 이적을 만드신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분노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바로 "공감"의 문제 때문입니다.
같이 아파하지 않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뛰어들지 못합니다.
같이 슬퍼하지 않고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죠.

그런데
공감의 영이 없으니
엉뚱한 말들을 하고,
터무니 없는 행동과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중심에 하나님의 마음과 공감하지 않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내 중심에 하나님의 아픔, 하나님의 눈물에
공감하지 않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겉모양과 형식으로
신앙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신앙입니다.

오늘 욥을 소개하는 첫머리에
5절은 이렇게 씁니다.
"욥은 모든 일에 늘 이렇게 신중하였다."고.
이 말을 풀으면
"욥의 삶은 늘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계신지를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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